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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Apr 14. 2024

이상한 부자(父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로운 일요일 저녁 남편과 tv시청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휴대폰 화면에 '아빠'라고 저장된 번호가 뜬 것을 확인하자마자 남편은 이마에 인상부터 쓰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대는 나의 팔꿈치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챘는지 남편은 그제야 목소리의 톤을 약간 누그러뜨렸다.

3구짜리 멀티탭 하나가 필요한데 읍내 가게에서는 적당한 제품을 찾기가 어려우니 도시에서 흔한 다이 0에서 구매를 해왔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멀티탭의 종류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이 원하시는 종류는 스위치가 달려있지 않은 단순 3구짜리 멀티탭이었다.

그 후로도 몇 분 동안을 별거 아닌 내용으로 아버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지 목소리가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고 그에 맞서 아버님의 목소리 톤도 변해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사진 찍어 보내드려 봐'라는 나의 말에 일단 남편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 냐며 나무라는 나에게 남편은 이상하게 아버님과 대화를 하게 되면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잔소리와 다독임 중간쯤으로 구슬리는 내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한 남편은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사진 확인을 하지 않으시는 아버님께 결국은 내가 전화를 걸었다.

사진전송이 안 됐다는 아버님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또 구시렁구시렁했다.

분명 화면에는 전송된 사진이  보이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아버님의 휴대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또 옥신각신.

참 별일도 아닌 일로 자주 부딪히는 부자다.

이 정도이니 아버님도 남편을 스스럼없이 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도 아버님은 어떤 정보가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꼭 다른 자식이 아닌 남편에게 전화를 하신다.

컴퓨터가 불통일 때도, 핸드폰에서 뭔가가 삭제됐을 때도, 주식에 관련된 다분히 전문가적 견해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남편이 해결해야 할 크거나 작거나 한 일이 되었다.

뭐든지 직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흔쾌하진 않지만 아버님이 부탁하신 사항에 대하여 꼼꼼히 몇 번을 질릴 만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를 반복한다.

언제가 남편은 퇴근하는 나에게 " 오늘 아빠가 몇 번 전화했는지 알아?" 얼굴에 어이없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기가 일 처리를 잘하니까 그렇지"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예전부터 시댁 집안의 크고 작은 대부분의 일들에 자신이 개입하고 처리해 나갔다는 남편은 몇 년 전 "이제부터 우리 집일에 아무것도 관여 안 하고 신경 안 쓸 거야!" 나에게 선언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 남편은 한동안 시댁과 왕래도 안 하고 부모님이나 형제들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화도 냈다가 달래도 봤다가 하면서 나와 남편의 언성이 높아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아버님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으니 중간에 낀 어머님과 내가 불편할 때가 여간 많았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머님과 나의 관점에서 '둘은 성격이 완전 판박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다'라고 결론지었다.

똑 닮은 성격의 부자를 각 각 남편으로 둔 어머님과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둘이서만 통하는 눈짓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할 때도 많았다.


부자는 언제부터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함이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서운함이 이렇게 서먹한 부자관계를 만든 것이다.

퇴직 후 귀농을 하시고 이것저것 재배하기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남편은 군말 없이 도와드렸다. 

주말이면 농장에 내려가 깐깐하신 아버님 옆에서 몸 쓰는 일을 싫은 내색 없이 하곤 했다.

그렇게 여름이면 블루베리를 따고 가을이 되면 사과대추를 따는 일은 항상 나와 남편 몫이 되었다.

위로 형님과 아래로 남동생 하나 가 있었지만 가끔 다녀가며 아버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긍정의 답변을 내어주는 그네들은 효자였고 아닌 건 아니라고 아버님께 바른 소리 하며 종종 아버님의 생각에 반기도 드는 남편은 불효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일이니 그냥 해드리는 거야" 언젠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며 자기는 힘들지 않냐는 내 질문에 남편은 어쩔 수 없지 않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는 막내라 이런 일 해본 적도 없어' 내심 생색도 냈지만 남편과 항상 동행하며 일손을 도왔다.

그렇게 농장에서의 일이 당연하게 우리 일이 되어갈 때쯤 아버님께서 남편을 서운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당시 시동생집과 우리 집은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버님께서 시동생에게만 경제적 지원을 하신 거였다.

두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겠다는 아버님께 남편은 '동생도 나도 다 각자 알아서 할만하니 아빠가 도움 안 주셔도 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가 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농장에 일하러 간 남편은 동생에게만 지원을 해주었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남편에게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라기보다 본인의 생각을 아버님께서 따라주지 않음에 더 서운함을 느낀듯했다.

그 후로 1년여 동안 남편과 나 사이에 시댁에 관한 사소한 얘기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저 남편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며 나는 꾸준히 어머님께 안부전화 드리고 가끔 찾아뵈면서 남편과 아버님의 벌어진 사이가 자연스럽게 아물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섣불리 한쪽 편을 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시간의 흐름에 맡겨두고 서로가 오해를 풀고 서로의 진심이 조금씩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시댁 근처에 가지도 않으려 했던 남편이 시댁 아파트 주차장에서 나만 올려 보내고 차 안에서 대기하기를 몇 차례 하더니 아버님의 병원 입원 며칠을 앞두고 자의 반 타의 반 왕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았던 겨울의 맹추위도 정해져 있는 사계절의 순리에 따라 어느 순간 스르르 냉기가 풀리듯 굳게 닫혔던 사람의 마음도 상대의 진정성을 느끼는 순간 맥없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진심을 외면하면 할수록 내가 쌓아놓은 오해의 아성은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아 쉬이 무너뜨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입맛이 까다로우신 아버님이 그나마 즐겨드시는 오리 한 마리와 소고기, 바나나, 파프리카 등을 카트에 담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본다.

다정다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을 대신한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인 것을 아버님은 분명히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곁에 있는 당연함이 소중함의 의미인 것을 자주 잊게 되는 것만큼 그 당연함이 영원불멸의 것 이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는 잊고 있을 때가 많다.


서서히 다가오는 봄 마중을 위해 몸과 마음을 채비하듯이 오늘도 나는 아버님과 남편사이의 거리가 단 1cm 라도 좁혀질 수 있도록 행복한 채비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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