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마음을 내려놓기
졸린 눈을 비비고 짜증 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잦아진 윗집의 소음 때문에 나와 남편의 편안한 저녁시간은 불편해지고 있었다.
몇 년 동안을 조용하게 보낸 윗집인데 참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사람은 본인이 사용하는 안마의자 소음으로 우리들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상당히 미안해하며 물었던 터라 한두 달 전부터 발생한 소음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리실을 통해 층간소음 방송을 해달라고 몇 번을 말했다.
그러다 결국 남편과 나는 귀마개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귀마개를 통해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되레 깜짝 놀라 귀마개를 빼버린 적도 있었다.
나는 간단한 쪽지를 써서 윗집의 현관문에 붙여놓았다.
이런 것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더 커질 것이 우려되어 조심스럽고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우리의 불편함을 전달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런 변화 없는 여전한 소음은 우리의 예민 함을 한껏 끌어올렸다.
참고로 우리는 거실에서 신는 슬리퍼는 물론 남편은 심지어 발 뒤꿈치까지 들고 걸으며 아랫집을 배려한다.
나는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 없다고 조금만 신경 써서 걸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이미 습관이 되어 물 위를 걷는 것보다 더 가볍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고요한 시간이 소리에 더 민감한 것이라며 나에게 주의를 주곤 한다.
의자에 신발을 신겼음에도 불구하고 의자를 뺄 때면 절대로 바닥에 끌지 않고 손으로 들어서 뒤로 빼고 넣는다.
이렇게 하다 보니 사실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처음 시작이 어색하고 힘든 거지 이미 습관이 행동으로 굳어지면 더 이상 조심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제스처가 나오는 것이다.
습관 들이기 나름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닌 것이다.
어쨌든 그런 우리기에 윗집의 소음을 더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한 달 정도를 지켜보다가 두 번째 쪽지를 전했다.
쪽지를 보고 마음 불편할 상대방을 생각하니 내 마음 또한 한없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이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며칠 후 외출하고 돌아오니 윗집에서 붙이고 간 것으로 짐작되는 깔끔하게 워드로 작성하여 출력한 A4용지가 현관문에 붙어있었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별거 아닌 소음으로 쪽지를 붙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답신을 한다는 그녀는,
본인도 층간소음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어 부부 둘 다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활소음 정도는 이해해 달라며 우리 가정의 평안을 전하는 말로 편지는 끝맺음 을 하고 있었다.
아, 그거였구나.
항상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집에 새사람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소음의 폭이 커졌던 것이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가 집안을 정돈하고 물건들을 배치하느라 상당기간 그런 소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랬던 터라 답글을 받고 보니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고 나이 먹은 내가 좀 참을걸 그랬나 싶기도 해서 엘리베이터 타기가 두려워졌다 그녀를 만날까 봐.
하지만 같은 라인에 살면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고 또 불편한 건 못 참는 내 성격에 하루하루 출퇴근길이 고역이었다.
나보다 멘털이 강한 남편은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전전긍긍하냐며 되레 나를 나무랐다.
그러던 어느 날의 퇴근길에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그녀가 안에 있었다 혼자.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는데 가만 보니 그녀였다.
몇 초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말을 건넸다.
"결혼했어요?"
"네"
이사 나간 그녀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어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서로 불편하게 지내지 말아요"
"네... 저도 윗집소음 때문에 힘든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을 알아요"
"그래요 서로 조금만 이해하고 조심하면 되죠" 하는 내 말에 그녀는,
"네... 앞으로 저희가 좀 더 신경 쓸게요"
서로 불편할 수도 있는 대화를 최대한 가볍게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목구멍에 걸려있던 돌멩이 한 개가 툭 하고 빠져나간 것처럼 숨쉬기가 편안했다.
집에 있던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니 남편도 실룩하고 웃는 것이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눈 이유로 놀랍게도 윗집은 조용해졌다.
아니 어쩌면 내 마음이 조용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즈음 내 마음의 소음이 더 커져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어떤 사소한 문제하나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그 부피가 커질 대로 커져서 처음 시작은 미비하였지만 그 끝은 창대해진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으로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듯 누군가가, 아니면 어떤 불편한 상황이 일단 내 바운더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것이 사소하게 작은 것일지라도 손에 박힌 가시처럼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조금씩 깊게 파고드는 가시의 고통 속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안에서 나의 삶은 흔들릴 수 있고 때로 피폐해질 수도 있지만 삶이란 결국 갈팡질팡 한 마음속에서 버텨내는 것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너무 단단히 메어두지 말자.
마음을 한 곳으로만 두지 말고 사방으로 펼쳐두자.
나의 마음이 정착한 그곳이 부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옹졸한 세상이 아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