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노 10시간전

배려와 오지랖의 한 끗 차이

세심히 생각해야 보이는 것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오지랖'은 주제넘게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다 고 되어있다.


이런 경우는 무엇인가?

초면인 사람과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같다고 일행들이 아무렇지 않게,

"김 아무개가 가는 길에 내려주고 가면 되겠네"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은 배려를 받은 것이지만 다른 한쪽은 오지랖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어쩌면 차를 동승해야 하는 두 사람 다 불편한 배려를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배려라는 이름으로 둔갑된 것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떠한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상대방의 접시에 듬뿍 담아주는 것.

음식에 대한 취향은 상당히 개인적인 것으로 호불호가 확실한 경우가 많다.

나는 이미 배가 부르고 숟가락까지 놓은 상태에서 다시 한 그릇이 된 그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진다. 


한 사람을 위한 배려가 여러 사람을 단체로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집단에서 상사가 한 사람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팀원들의 사기를 순식간에 떨어뜨리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라도 불가피하게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시기를 조율하거나 조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은 배려를 받은 당사자 또한 마음 불편하고 팀원들의 눈치를 보다가 남은 사람들끼리 어색하고 기분까지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위한 배려는 단순히 도움을 주는 행위라기보다는 어떤 시점에서 누구에게 베푸는 것인지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다.


나의 시점에서 베푸는 배려로 인해 상대방은 더 불편해지고 심지어는 기분까지 상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표현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난처하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야 할 때 저만치 앞에서 들어가는 사람이 문을 잡고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리고 서있는 경우가 있다.

참 고맙지만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할 때까지 문을 잡고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고마움을 느끼는 것보다 먼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배려가 불필요한 세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주의 가 팽배해진 이 사회에서, 무엇이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는 삶의 편의를 정석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따듯한 배려를 기분 좋은 친절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재고 따지는 계산적인 통계의 세상에 이미 우리가 익숙해져 버린 탓 이리라.


내 생각을 묻고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위한 진정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배려와 오지랖을 한 끗 차이로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려 깊게 살필 때 나의 배려가 불편한 오지랖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잠귀가 밝은 편인 나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에서 깬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나 이른 잠에서 깨어 거실에 나갈 때 무척 조심하는 편이다.

나는 또 대부분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위해 거실의 티브이 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남편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별거 아니지만 그 흔한 일상에서의 루틴이 조금씩 틀어질 때  내가 체감하는 불편함은 배가 되어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알고 지내 서로의 취향 내지 는 성격까지도 고려된 상태에서 서로를 배려할 때 우리는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하게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라도 매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단점을 들춰내지 않는 것 또한 그 사람을 위한 배려이다.

누구에게나 굳이 일부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속의 상처 또는 비밀 한 조각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말없이 내버려 둘 때 상대방은 되려 그 무언의 눈빛이 보내는 따듯함에 감동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배려의 시간 동안 상대방은 더 힘을 얻고 나의 존재를 드러낼 용기를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시간은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 언젠가 우리 삶이 흔들리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서로를 일으켜주고 지탱해 줄 수 있는 단단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밤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