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2번째 여행

가끔은...

by 피노

며칠 사이에 햇빛의 양이 달라지기라도 한 듯 연노랑색 물결이 온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겨울의 스산함이 느껴지는 주변풍경을 연신 바라보며 캠핑장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몇 년 전 여름 무렵에 활기차고 소란했던 이곳은 -봄가을로는 예약 잡기도 어려웠던 -며칠새 추워진 날씨 탓인지 텅 빈 사이트들이 많았다.

흩날리듯 내리는 눈발 속에서 여기저기 텐트 치는 손길이 분주하고 캠핑장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새는 겨울의 스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친구와 매년 12월의 첫째 주말엔 무조건 둘만의 여행을 가자고 정하고 두 번째 여정인 된 그날.

갈만한 곳을 물색하다가 약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군에 있는 캠핑장의 글램핑을 예약했다.

원래는 강원도가 물망에 올랐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비용이 부담스러워 아쉬운 마음을 접고 가까운 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사실 장소가 어디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한 해 동안 수고하고 지친 우리만의 힐링타임 이 필요했었기에 자연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고 수다 떨 수 있는 어떤 곳이든 상관없었다.


하얀 천막을 높게 쳐놓은 3번 글램핑이 우리가 예약한 자리였다.

손님을 맞기 위해 미리 난방을 켜놓은 일반 숙소와는 달리 한기가 느껴지는 방 안으로 들어서니 하룻밤을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생활기기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사장님이 바닥과 침대 위의 전기담요에 스위치를 올리고 온풍기 라디에이터 등을 순서대로 켜대니 실내에 조금씩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글씨를 너무 못써서 켈리그라피 글씨체를 연습하고 있다는 사장님과 잠깐동안 수다를 떨고 준비해 온 것들을 꺼내놓고 밖을 내다보니 제법 굵어진 눈송이가 데크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겨울엔 그래도 눈이지..

난로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장작을 피웠다.

금세 따듯해진 공기가 움츠렸던 어깨를 펴게 만들고 그제야 굳어져있던 얼굴근육도 조금씩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붉게 타들어가는 장작만큼 붉은 홍조를 띤 얼굴의 열기를 손바닥으로 비비다가 먼 산을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얀 눈이 내려앉고 있는 희미한 산은 그저 편히 앉아 가만히 이 순간을 흘려보내라고 나를 다독이는 듯했다.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마음속에 간직하길 바랐다.

앞날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자고 다짐하니 시간이 그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단순함에 따듯해진 실내만큼 나른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24시간으로 나의 삶을 계획하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오늘 하루만 나는 살면 되니까 그러면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 될 거니까.

오늘 하루 행복하기 위해 매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거니까.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이 얼마나 사람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지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또 완벽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우리를 얼마나 예민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지도 알고 있다.

나 자신 외의 그 누구도 나의 삶의 완벽함을 바라거나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완전함 속에서 매 순간 우리를 흔들어대겠지만 삶 자체가 가진 불완전함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원래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완벽함의 틀을 깨지 않으려 나 자신을 몰아세우고 그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만이 힘든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더 꼼꼼히 열심히 신중을 기하고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집중했을 때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잘하려는 욕심이 너무 크면 그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가진 능력의 일부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어렵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달려갈 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그 편협한 나만의 생활에서 빠져나와 넓은 세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간들은 단순한 여행으로의 목적뿐만이 아닌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다듬어 내는 목적을 지닌

짧은 자투리 시간이지만 필수불가결한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차츰 줄어들고 굵게 내리던 눈발이 어느덧 자취를 감출 때쯤 우리는 이곳으로의 여행이 왜 필요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고 다시 돌아가게 될 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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