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꽃미술관

그림이 주는 행복

by 피노

진도대교를 지나 오른쪽 좁은 도로로 접어들 때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주말 동안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자주 비켜나갔던 일기예보가 시간대마저도 변경되지 않은 채 이번에는 적중하고 있었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여느 시골길이 그런 것처럼 자연이 주는 어떤 물질도 자연스럽게 용해시켜 주변의 풍경에 녹여내는 것이 무척이나 운치 있었다.

산 중턱으로 내려앉은 자욱한 안개가 조금씩 걷힐 때마다 잠깐씩 드러나는 습기품은 산의 모습들이 하얀색 도화지에서 색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장장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목적지는 진도의 '산꽃미술관'이었다.

멀리서 주홍색 칠이 벗겨진 폐교의 지붕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고 2차선 시골길 한편에 미술관을 안내하는 입간판을 따라 오솔길로 50여 미터 들어가니 드디어 오래전 초등학교였던 폐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작년 가을 기획초대전으로 전시를 하기로 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해를 넘기고 3월에야 겨우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20여 년 전에 그곳에 터를 잡았다는 선생님은 초등학교였던 폐교를 3년 전부터 손보기 시작하였고 작고 허름하지만 지금의 미술관으로 탄생시켰다.

수묵화를 그리시는 선생님은 몇 해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그 미술관을 운영하시는데 그에 따른 어려움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럴듯한 미술관이 아니란 것을 알고 갔지만 막상 생각보다 더 허술한 그곳을 보니 이렇게 한적한 곳에 내 그림을 건다는 것이 조금은 창피해졌다.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그림을 감상할까?

괜히 이 먼 곳까지 힘들게 그림들을 싣고 온 것은 아닐까?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고 있고 겨울이어서 그런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썰렁한 한기가 밀려오고 불까지 꺼져있어 스산한 그곳의 공기에 발걸음이 다시 한번 멈춰졌다.

나의 그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이라도 스크래치날라 뽁뽁이로 랩핑도하고 종이도 덧대어 꼼꼼하게 싸매온 액자를 조심스레 나르는 남편을 보니 괜한 고생을 시킨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복도 오른편으로 몇 개의 교실이 죽 연달아 있었고 그중에 한 곳은 선생님 집무실 겸 손님들 접대공간이었고 나머지 교실들은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내 그림은 맨 끝에 교실 두 칸을 터서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만든 곳에 걸었다.

교실에서 사용했던 오래된 난로가 한쪽에 장식처럼 놓여있었고 예전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다 작고 이쁜 어느 아이가 앉았었을 작은 의자를 가만히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림의 종류와 액자의 크기등을 고려해 가며 그림을 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전시는 내 목표를 조금이라도 이룬 결과물이고, 열심히 했으면 그것으로 되었어' 연신 마음을 달래 가며 스무 점 가까이 되는 그림을 다 걸었다.

사실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았고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그런 그림이라도 걸어준다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생각을 그렇게 정리하니 전시공간이 좀 허술하고 인적 드문 시골에 있는 폐교가 미술관이어서 실망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선생님이 따듯한 목련차와 다과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목련꽃잎을 찌고 말려서 덖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향이 좋고 속을 편안하게 해 주신다고 설명을 덧붙이셨다.

한기가 느껴지던 몸 안으로 따듯한 차 한잔이 들어가니 낯설었던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예전교실의 나무 바닥을 그대로 살려 둔 덕에 몇십 년 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실의 차가운 나뭇결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열심히 양초를 문질러서 반들반들 윤을 낸 교실바닥에 천장을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워봤었던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날씨가 조금 따듯해지면 지붕에 벗겨진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주변정리도 서서히 하실 거라며 이래 봬도 작년에 이곳에서 전시를 12차례 하였다며 흐뭇해하셨다.

초등학생들의 전시부터 나처럼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린사람, 또 제법 실력이 좋은 화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된다고 한다.

지역주민을 위한 전시공간으로만 생각했는데 나처럼 멀리서 그림을 전시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선생님은 그 공간을 전시할 그림들이 필요하고 나 같은 일부는 자신의 그림을 걸어줄 공간이 필요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읽으셨는지 이런저런 그림들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은 전시를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매개체가 아니냐고 속내를 내비치셨다.

그림을 거는 순간까지도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들었던 나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현실을 직시했다.

적어도 몇십만 원의 대관료를 내고 갤러리를 대여하여 그림을 건다 해도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아니면 그림 한 점 팔기 어려운 게 이름 없는 화가들의 현실이다.

그림이 잘 팔려서 왕성한 작품활동도 하고 일 년에 꼭 한차례 씩은 개인전도 하는 화가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작년 겨울 25년 그림전시를 위해 열명 남짓한 작가들의 미팅자리에 나간 적이 있었다.

협소하고 초라한 공간에 자신의 작품을 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셨던 나이 지긋한 선생님과 전시 후에 그림이 몇 점이나 팔려나갔는지를 궁금해했던 여류화가 선생님은 생계형 화가 들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누군가의 열정으로 또는 행복으로 그려졌을 그림들을 뒤로하고 여전히 비가 내리는 그곳을 처음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던 여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작은 세상.

그곳은 희. 노. 애. 락. 을 다양하게 만날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세상이다.

어쩌면 그런 세상을 꿈꾸는 나의 간절함을 이해하고 이룰 수 있게 나를 이끄는 것은, 여러 형태로 드러난 나의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삶의 다양함을 묵묵히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이 주는 힘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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