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말하세요.

by 피노

요즘 '미지의 서울'이란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고 가끔 가슴에 콕하고 박히는 대사들이 감동을 주기도 하고 일단은 재미있어서이다.

주말인 어제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던 중 한 장면을 보다가 나는 한참을 울고 말았다.

주인공인 미지가 할머니에게 찾아왔을 때 할머니는 자신이 쓰러지고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는 것이 무서웠다고 말한다 미지도 그랬을 거라고 그래서 오랫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한 미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이다.


엄마가 쓰러지고 병원에 오랫동안 누워있을 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큰 슬픔을 겪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엄마가 마냥 불쌍하고 엄마의 상태가 현재보다 더 회복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신체적으로 마비가 온 엄마가 움직이지 못해서 답답하고 말을 하지 못해서 더 답답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엄마의 정신적인 상태가 어떨지는 간과했던 것 같다.

그때는 우리가 가진 슬픔이 너무 크고 막막해서 엄마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말하고 싶다.


말은 못 했지만 정신이 온전했던 엄마가 자신이 다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텐데 그때 받았을 충격과 절망이 얼마나 큰 무서움으로 엄마의 마음을 지배했을지 드라마의 그 장면을 보다가 오버랩이 되면서 마음이 마구잡이로 헤집어졌고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위로가 진정으로 엄마를 위한 것이었는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했던 각오였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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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떤 상황이 와도 엄마는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고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야만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엄마가 말을 할 수 있어서 '괜찮지 않다' '너무 힘들다' '아프다' 엄마의 고통을 고스란히 표현해 냈다면 과연 나는 크나큰 슬픔을 태연하게 가장한 채 엄마의 옆을 지킬 수 있었을까?


지금도 내게는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과 행동 몇 가지가 있고 그런 것들은 강력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마음 안에서 떨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움직였던 한쪽 손으로 내 옷깃을 꼭 잡아주었던, 영하의 겨울 날씨보다 더 마음이 얼어붙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그날.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손을 떼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나를 휠체어에 앉은 채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막내딸을 보내는 슬픔인지, 혼자 견뎌야 하는 두려움 인지.

'딸 잘 갔다가 다시 와, 엄마는 괜찮아'

엄마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거다 자식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건 더 싫었을 테니까.

돌아오는 내내 엄마의 그 눈빛이 뇌리에 박혀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악착같이 움켜쥐어야만 했다.

그날 하늘에서 내리던 눈 은 하염없이 쏟아지던 내 눈물을 더 부추겼다 엄마를 위해서 조금 더 울어주라고.


눈물 콧물 빼면서 훌쩍이는데 남편은 "갑자기?' 이런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들, 장소들, 자식들과 함께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항상 눈물 지었지만 정작 엄마가 느꼈을 깊은 슬픔, 불안감, 두려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찾아왔을 '낙망'의 감정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을 엄마, 를 이제야 비로소 그 드라마 속 누군가의 엄마를 통해 바라본 것이다.


'엄마'

가만히 불러보았다.

'엄마, 그때 많이 두렵고 무서웠지?'

지금 누군가 곁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말하자.

"힘들지? 내가 그 마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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