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만큼 힘들면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올해는 전년도 보다 장마가 빨리 시작될 거라는 기상캐스터의 말을 들으며 이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휘몰아치겠구나 걱정이 앞섰다.
더위에 취약한 나는 하필 여름이 시작될 때 두 달간의 병가가 끝났음을, 그럼에도 아직 내 몸과 마음은 허약함을 이겨내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웠다.
여전히 시끄러운 귀와 가끔씩 견뎌야 하는 어지러운 육체를 끌어안고 또다시 인내가 필요할지 포기가 필요할지를 분명히 해야 할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조금은 어색한 마음으로 들어선 나의 일터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2층 로비 창가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고목나무, 종류도 잘 모르겠던 여러 개의 난초, 가끔씩 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던 금전수, 여러 가지 장비 덕분에 조금은 소란스러운 실험실 소음, 과 그와 반대로 묵언수행을 하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 그 안의 내 자리는 두 달 동안 주인의 부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뽀얀 먼지가 컴퓨터와 책상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애착이 갔던 식물 몇 가지만 동료들에게 부탁했던 탓에 외면받았을 다육과 몬스테라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해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그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무늬벤자민 은 아무리 봐도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운명을 다해서 누군가 버렸겠지'
매일 봐왔던 낯익은 풍경이 낯설다고 느껴진 탓은 주변의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온도가 달라진 때문이란 것을 알아챘다.
쉬는 동안 아침 산책을 자주 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어느 날 차분히 내리는 빗속에서 이유 없이 차오르는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그런 고민과 생각들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쓰잘데 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그들을 신경 쓰고 배려하는데 씌어왔던 에너지를 나를 위해 써야 하는 편안한 시간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한 차등을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한 1/4쯤?
직장에서의 하는 일은 내가 원하는 직업과 전혀 달랐지만 결국은 내 선택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끔씩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같은 뜨거움을 '헉헉' 대며 삼켜내야 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쳐가며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그 두 가지를 분리시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허덕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고민으로 점철되었던 방치된 시간들.
지금부터라도 그 두 가지를 분리하기 위해 나는 '조금 이기적인 나'가 되기로 작정했다.
사실 작정했다기보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직장은 그저 직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특별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집중해서 들여봐야 할 것은 내 주변의 것들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내가 해왔던 업무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이뤄내야 할 결과물도 여전히 그대로인 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료들의 애씀으로 인하여 일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내가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하는 부분은 당연히 내 몫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부담이 없었다.
일에 대한 압박감도, 남들의 시선에서도, 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자 했던 책임감 따위에서도 벗어나 버린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그저 충실히 하는 것' 딱 그것까지가 내가 해야 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용기 내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
또다시 내가 아닌 다른 주체로 인하여 지치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숨어버린 나를 찾기 위하여 그 정도의 이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눈동자안에 가득 들어찬 녹음이 어느새 마음까지 적시다 못해 그 안에서 연신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여름은 나에게 항상 아이러니 함을 느끼게 한다.
더위로 인해 견디기 힘든 여름과 그로 인해 온 천지로 번져가는 싱그런 녹음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날은 여름을 저 멀리 내 다 버리고 싶기도 또 어느 날은 내다 버린 여름을 얼른 품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싶어 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아이러니 속에서 삶은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손에 희망과 절망을 함께 쥐고 있을 때 어느 쪽 손을 꼭 움켜쥘 것인지는 나만이 선택할 수 있는 보장된 기득권이다.
부디 그런 삶 속에서 희망이란 주체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말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