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원의 가치

유한안 행복

by 피노

오늘도 우리 부부는 5천 원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선다.

매주 목요일이면 남편과 나는 이 길을 걸어 복권 가게로 간다.

결혼 후 남편이 꾸준히 복권을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날 '요행수나 바라지 말아라,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돈을 좇으면 안 된다'라고 우리 아빠가 항상 하신 말씀이다, 핀잔을 주곤 했다.

남편은 그런 나의 꼰대 같은 잔소리를 귓등으로 넘겨버림과 동시에 속물 같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라도 한 듯 "그럼 자기는 복권 당첨되면 안 쓸 거지?"

"당연히 써야지, 자기는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냐?"

눈을 흘기며 남편을 바라본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꼭 남편과 동행하는 것은 물욕이 전혀 없는 남편의 사행심을 유발하는 것이 내가 꿈꿔오고 있는 돈깨나 드는 1순위의 버킷 리스트 때문일 거라는 거의 확실한 추측과 그런 요행을 얻어서라도 아직도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이 여전히 많은 철부지 아내인 나를 -본인과는 참 많이 다른-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남편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에 네 번 우리는 거의 같은 시간 같은 노선으로 복권집을 향해 걷는다.

한 평남짓 되는 작은 공간에서 복권을 팔던 사장님은 몇 년을 다닌 우리 덕분? 인지 얼마 전 약 30여 미터 옆에 들어선 신축건물로 이사도 하셨다.

평수도 제법 큰 지라 스탠드형 에어컨도 설치하고 언젠가 곁눈으로 힐끗거리던 파티션 너머에는 소파와 티브이도 놓여있었다.

너무 협소한 공간에서 비좁게 앉아있는 사장님을 볼 때마다 우리 마음이 불편해서였는지 내가 이사한 것도 아닌데 예전 가게 출입문에 '가게 이전합니다' 하고 그려놓은 약도를 보면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렇게 복권을 팔아서 사장님이 부자가 된 거 아니냐, 그러니 곧 우리 차례도 다가오겠지? 일주일에 한 번씩 완전한 빅 픽쳐를 그려가며 복권집 문지방이 달토록 넘어 다녔다.

그러면서 "당첨되면 일단 회사부터 때려치우고 여행먼저 가자, 그리고 차 바꾸고 큰집을 살까? 아니다 돈도 많은 데 뭐 하러 집을 사냐, 그냥 편하게 월세로 살자" 등 등 둘이 얘기하면서 누가 들으면 안 된다고 소곤거리며 얼굴을 맞대고 키득대곤 했었다.

그렇게 사심으로 가득 찬 우리를 비난이나 하듯 복권 당첨은 되지 않고 지금은 그냥 재미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웃고 떠들고 행복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 그 길은 우리에게 엔돌핀 도는 삶을 선물해주고 있다.

"오늘은 저 집 이층 창틀에 새로운 나무를 가져다 두었네? "

빨간 벽돌을 이쁘게 쌓아 만든 주택을 바라보면서는 " 이 집 배롱나무 꽃이 참 이쁘게 피었다"

"오늘 복권집 사장님 저녁 메뉴는 뭘까? 저번주에는 된장국 냄새가 진짜 맛있게 났었는데 그지?"




날씨가 좋은 날은 바람이 상쾌해서, 비가 오는 날엔 우산 한 개를 받쳐 들고 둘이 꼭 붙어서 -남편은 우산 두 개를 고집하지만 - 눈이 내리는 날엔, 언젠가 꽃샘추위에 매섭게 불던 바람과 싸워가며 올랐던 지리산 노고단의 하얀 풍경을 추억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자본주의의 산물로 시작했던 사심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숨어있어선지 다른 날의 산책길보다 그날 우리는 더 많이 웃고 떠들고 맞잡은 손도 더 꼭 쥐고 가벼운 발걸음에 랄라룰루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그렇게 한 길만 바라보고 달린 덕인지 얼마 전 드디어 남편이 25만 원에 당첨이 되었다.

그동안 들인 돈은 생각도 안 하고 우리는 1등 당첨이라도 된 양 폴짝대며 춤을 추었다.

5천 원으로 똑같은 번호 5장을 샀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 제법인데?'

남편이 한 턱 쏜다길래 족발 집으로 향했다.

날씨는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무더웠지만 공짜로 얻어먹는 -나는 그동안 투자한 돈이 없으니- 족발은 왜 그렇게 맛있던지.

지금까지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족발 몇백 개를 먹고도 남을 돈이겠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행운을 바라며 걸었던 그 길에서 우리는 진짜 행복은 여기저기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에 그에 따른 기회비용 은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라고 좀 멋지게 합리화도 시킨다.




부족한 것이 채워질 때, 원하는 것을 손에 쥘 때, 남들보다 더 좋은 집과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될 때,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행복은 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많은 비교대상만 늘어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오늘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이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에 대해 건강하지 않은 애착이 있는 것이다.
필요는 심한 결핍을 암시한다.
따라서 무언가 필요하면 그것이 충족되기 전에는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거나 행복하지 않다.
-퓨쳐 셀프- 벤저민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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