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을 찾습니다.

소중함 의 가치

by 피노

얼마 전 퇴근길 집 근처 신호대기 중 우연히 바라본 곳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었다.

오늘 퇴근길에서도 눈길을 돌린 그곳엔 여전히 현수막 이 펄럭이고 있었다.

일주일쯤 된 것 같다.

며칠 전 입추가 지나고 제법 시원해진 저녁바람을 맞으며 걷던 중 같은 현수막이 큰길 대로변에 걸려있는 것을 무심코 바라본 기억이 났다.

저렇게 여러 군데 걸린 현수막의 문구에는 누군가의 애타는 심정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림을 배우면서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여느 날처럼 화실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왁자지껄 하던 평소의 분위기와는 다른 기류가 거실 한 복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옹기종기 동그랗게 모여 기도라도 하는 모양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숙연한 분위기에 '뭐지?' 하면서 조심조심 다가 가본 나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정체를 발견하고 두 번 깜짝 놀랐다.

한 번은 너무나도 작고 이쁜 강아지 인형이 있어서이고 두 번째는 그것이 사실은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진짜 강아지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누가 이렇게 하얗고 쬐만한 이쁜 인형을 가져다 놨대?" 하며 고개를 숙이다가 덩치도 큰 남자들이 손도 대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마르티스 종이라 불리는 실제 강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낳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조그만 새끼 강아지가 이상한 괴물들? -강아지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을- 에게 둘러싸여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누구든 키워보라는 말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 저녁 바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오자 마자 목욕을 시키고 물기를 대충 제거한 다음 헤어드라이기를 멀치감치 떼어낸 채 키워본 적도 없는 애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털을 말려주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작은 원룸에 살았었는데 혹시라도 잠자면서 강아지가 나에게 눌려서, 아니면 엄마를 떠나 낯선 곳으로 온 그 작은 생명체가 밤사이 잘못될까 봐 몇 번이나 깨어서 강아지에게 귀를 갖다 대고 숨소리를 확인하였다.

그렇게 작은 동거인이 생기니 외롭지 않고 참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외출하고 혼자 외롭게 있을 강아지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생각 끝에 화실 사람들의 허락을 구하고, 강아지를 데려오고,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여럿이서 고심도 했다.

그 옛날 특히 시골에서 '메리' 하고 부르면 이 집개 저 집개 다 짖어대던 개 이름 중의 절대적 강자 킹 '메리'부터 '새침이' '꼬맹이' 온갖 이름이 다 나왔지만 초롱초롱 한 강아지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초롱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화실에서 숙식을 하던 남자 동생이 초롱이와 처음엔 조금 불편한 관계를 맺어가다가 나중엔 떼려야 뗄 수 없는 종(種) 이 다른 형제가 되어갔고 우리들 모두는 그렇게 서서히 한 가족이 되어갔다.

그 후로 몇 번의 화실이동이 있었고 그때마다 당연히 초롱이도 우리와 함께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발 위에서 곤히 낮잠을 자거나 때로는 놀아달라며 장난을 치던 초롱이도 그렇게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고 제법 덩치도 커졌다.

말썽도 피우지 않고 하는 짓이 얼마나 이쁜지 어떤 때는 서로 초롱이를 자기 발 위에 앉히고 재우겠다고 다 큰 남자들끼리 티격대는 것을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별 일 없이 일상은 흘러갔고 어느 해 추석 연휴를 맞아 나는 집으로 내려왔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고향집이 멀어 추석연휴를 화실에서 혼자 보내게 된 자칭 초롱이 형이었다.

"누우나~~~ 어뜩해 어뜩해 흑흑~~~ 어쩌고 저쩌고~~~ 초롱이가~~~~ " 다짜고짜 우는 소리에 한참을 멍하니 듣고만 있던 내 귀에 '초롱이' 란 단어가 콕 박히는 순간 나는 무슨 사달이 나도 크게 났구나 를 감지하였다.

상황파악을 해보니 이러했다.

화실에 있다가 밖에 나가서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왔는데 술김에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잠이 들어버렸단다.

그 참에 혼자 심심했던 초롱이는 때는 이때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조용히 가출 내지는 사람들 사는 세상구경이나 실컷 하자 맘먹고 집을 나선 것이다.

몇 시간째 동네를 돌고 돌아 초롱이를 찾고 헤매다가 '설마'가 현실이 되자 울며 불며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일단 초롱이를 찾는다고 A4용지에 써서 여기저기 붙여봐, 초롱이 특징도 꼭 적고"

그렇게 전봇대, 벽 등 사람눈에 잘 띄는 곳이라면 무조건 전단지를 붙였더랬다.

그리고 수시로 동네를 다니면서 초롱이를 찾았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오는 날만 하루하루 늘어갔다.

길을 걷다가 하얀 마르티스 종이 눈에 띄면 그 옆으로 살짝 지나가면서 복화술이라도 하듯 "초롱아" 하고 불러 보기를 여러 차례.

그 당시에 마르티스 종이 인기가 좋았는지 초롱이처럼 생긴 강아지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결국 초롱이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화실에서 초롱이와 먹고 자고 함께 생활했던 그 울보 동생은 그 후로도 한참을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했다.

그때부터 나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동물과도 이렇게 애틋한 정이 들고 그 이별의 그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준 것들에게는 그것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하등 다를 게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길가에 구르는 이름 없는 돌멩이 하나라도 나에게 와서 의미가 되어주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소중함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 꼭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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