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서울의 어느 여름

너 , 뒤통수 조심해라!

by 피노

'오늘도 낮 기온이 33도를 넘나드는 지역이 많겠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야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고 건강 관리에 특별히 주의를 요합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놓은 뉴스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 멘트를 듣는데 이상한 기시감이 나를 2004년 여름의 어느 날로 데려다 놓았다.




사람 많기로 소문난 2호선 지하철 안에서는 내 육체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퍼져 나오는 온갖 냄새들이 정말 참을 수 없어 조금이라도 몸을 틀을라치면 옆사람에게 허락이라도 구해야 할 판이었다.

일명 '푸시맨' 들이 종이조각 구겨 넣듯 사람들을 그 안에 몰아넣었으니 오죽했으랴.

그 당시 지하철 역사 안에는 '베트맨'도 아닌 '스파이더맨'도 아닌 그렇다고 '슈퍼맨'도 아닌 '푸시맨' 들이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직장인들의 지각을 막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철저한 사명의식과 인정사정 보지 않고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괴력을 가진 사나이들로써, 하루하루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냈다.

자칫 계산이 잘못되어 꿰맞춰줘야 할 블록에 제대로 끼워지지 못하고 다시 지하철 밖으로 튕겨져 나온 이들을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에 기어이 몰아넣는 기이한 행동은 그들의 능력을 한껏 빛나게 하였다.

그렇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푸시맨' 에게 사정없이 떠밀려 출근길 지하철을 무사히 타기라도 하면 안심이 되던 일이 당연한 날 들이었다.




땀냄새, 화장품냄새, 향수냄새, 또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역한 냄새들이 섞여있어, 아무튼 코 와 입 외에 다른 곳으로도 숨을 쉴 수 있다면 그 두 기관을 막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여름 퇴근길 지하철 안 은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보태어, 당시에도 콩나물시루 같은 그 안에서 일부 추행꾼이나 소매치기 들은 시시때때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나의 한쪽 손은 항상 가방을 움켜쥐고 다른 한쪽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쓸데없는 움직임은 주변인의 의심을 사는 행위가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엉뚱한 곳에 손 이 끼어 '어딜 만져?' 가재 눈을 뜨는 옆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에 손의 사용을 미연에 방지한 거지만 사실, 손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날은 감사한 날이었다.


얼마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우선 '숨'부터 크게 한번 뱉어 내야만 주위 것들이 제대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역사를 나가고 싶어 올려다 본 계단 끝, 아직 발광하는 붉은 햇살에 뒤태를 물들인 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해 본 적 있지 않나?

'이제 됐다' 안도함에 나른하고 정신까지 여유로워져 무방비 상태로 방심하고 있을 때 귀신같은 누군가가 용케도 그 틈을 타 뒤통수를 '탁'하고 쳤을 때 아찔해졌던 그런 경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in side, out side, 그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향해 앞만 보고 걷는 로봇처럼 움직였고 나도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싶다는, 더 이상 계단을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불안감에 고개를 들었고 그때 아래쪽을 향해 부지런히 내려오는 한 남자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하였다.




'뭔가가 예민한 나의 몸 일부를 스쳤다, 아니 정확히는 내 가슴 을 만졌다'

머릿속이 잠깐 암전 되었다가 '뭐지? 방금 뭐지?' 하고 인지했을 때 나는 겨우 뒤를 돌아보며, 태연하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방금 전 나를 스쳐갔던 그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정신줄을 가다듬고 발길을 돌려 한시바삐 역사를 빠져나왔던 기억만 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내 가슴을 만졌던 그놈 손의 감촉은 내 머릿속에 징그럽게 각인되어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고 사람들은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면 외면하거나 방관하거나 의 태도를 보이는 그런 시대였다.

요즘처럼 의인이라도 나타나 그놈을 패주었더라면, 한동안 나는 출 퇴근길 내 가슴을 팔로 두른 채 어딘가 조금 모자란듯한 행동을 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봉천동 지하철역에서 내가 사는 곳 까지는 도보로 약 15분이 걸렸다.

지상으로 나오면 오른쪽 왼쪽 어느 곳을 선택해도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어느 쪽이든 그리 심하지는 않은 오르막이 있었고 비디오가게, 옷가게, 치킨집, 또 간단하게 장을 볼 수 있는 슈퍼마켓 등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골목길과, 차도옆 인도를 걸으며 시끄러운 소음을 감수해야 히지만 조금은 시간이 단축되는 지름길이 있었다.

나는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필요에 따라 방향을 선택하곤 했지만,

목구멍에서 돌덩이가 하나 올라오는 답답함을 가까스로 억누른 그날은, 돌아오는 내내 그놈에게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지 못한 나를 자책하느라 어떤 길이 선택 되었던, 그 길은 더러운 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기분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내 감정의 기복이 춤추듯 헤까닥 대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놈의 감정은 쾌감 아니면 오늘도 한 건 해냈다는 자아도취 정도에 빠진 승리자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안에 너 있다' 란 대사로 유명했던 '파리의 연인'이란 드라마가 연일 화제였던 것만큼이나 2004년 여름의 더위 또한 매일 이슈였다.

서울 열대야 8일째, 티브이만 틀면 떠들어대는 기상청의 예보로 인해 1994년 최악의 폭염을 겪었던 사람들은 10년 주기로 무더위가 찾아온다는 풍문을 일반화가 될 수도 있다는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도시의 더위는 시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시골에 비해 녹지면적은 현저히 적은 반면 하루 종일 달궈진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 에어컨 냉방으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노면의 열기는 밤이 될 때까지 도시의 거리를 식힐 틈을 주지 않았다.




마치 사우나 실 안에라도 들어온듯한 숨 막히는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분을 삭여내느라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든 발걸음에 지쳐갈 무렵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1층엔 오토바이 수리센터, 중고전자제품 가게가 있었고 내가 거주하는 곳은 2층이었다.

2층 주인집 옆에 작게 붙은 별채 같은 곳에서 친구와 나는 자취를 했다.

1층 가게 옆에 난 대문을 열고 이층 계단을 올라가서 주인집을 지나 우리가 살고 있던 현관문을 열면 그동안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혀있었던 열이 화마가 폭발하듯 내 얼굴을 때렸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빛을 온전히 받아들인 옥상 시멘트 바닥의 열기는 바로 아래 우리 방을 온전히 점령했을 것이고 그렇게 서서히 방은 찜질방이 되어갔을 것이다.

4차선 도로가에 위치한 집은 밤새 차가 다니는 소리에 창문을 열기도, 숨 막히는 더위에 잠이 쉽게 들기도 어려워 고통스러운 여름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퇴근길 불쾌한 일을 겪었던 탓인지, 더위와 소음으로 인한 탓인지 자정이 넘어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친구와 나는 벌떡 일어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2층 옥상에는 청소를 하기 위해 주인집에서 구비해 놓은 긴 호스가 항상 놓여있었다.

우리는 마당에 있던 수도꼭지에 그 호스를 연결한 후 낑낑대며 좁은 계단을 통해 호스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최대한 열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물을 여기저기 옥상바닥에 쉴 새 없이 난사했다.

마치 아이들이 물총으로 서로를 쏘아대며 노는 것처럼 그렇게 신나게.

더웠던 물이 차가워질 때까지, 그래서 분노와 억울함 사이를 넘나들고 있던 내 마음의 혼탁함이 그 물로 깨끗이 씻어져서 바싹 말라버리고 급기야는 소멸해 버릴 수 있도록.

손내밀면 닿을 듯 가깝게 붙어있던 이웃에 들킬세라 소리도 못 내고 우리는 웃음을 참아가며 그렇게 한참을 '물아일체'가 된 채 외부와 단절되었다.

그날 우리의 행위는 미친듯한 더위를 핑계 삼아 탄식했던 젊음을 향해, 좁혀지지 않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향해, 내면에서 들끓던 멈출 수 없는 욕망을 대변하는 은유였을 것이다.

그날 주인집 부부는 며칠간 딸네집에 간다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 집을 나섰었다.




그렇게 더위를 몰아내기 위한 각개전투를 끝마치고 옥상 난간에서 우리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서울이란 도시는 잠드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서도 불 밝힌 서울의 밤 은 누군가의 희망, 절망, 그리움과, 외로움과, 쓸쓸함과, 고독함을 다 그러쥔 채 이내 꺼질 줄 몰랐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2018년, 2024년,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무더웠던 여름을 거쳐 올해의 여름이 우리에게 또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메뚜기도 한철, 여름도 한철이다.

그래봤자 조만간 가을 앞에 무릎 꿇게 되어있다.






















작가의 이전글'소중함'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