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현명한 이중인격자가 되자

by 피노


아침저녁이면 제법 시원해진 바람과 공기 덕에 나는 이제 조금 살맛이 나는데 어쩐 일인지 오랜만에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언니의 목소리에서는 쓴 맛이 났다.


이중인격 인 사람.

'인격의 통일성에 장애가 일어나서 생기는 이상 성격.

한 사람 안에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성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이른다.

동시에 활동하지 않고 하나가 활동할 때 다른 하나는 잠재되어 있다.'

라고 되어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를 괴롭게 만드는 이중성격을 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언니와 친하게 지내는 동료이면서 그 조직의 보스와는 가족인 사람이란다.

소위말하면 손톱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올여름에는 언니와 둘이 거제도 여행을 1박 2일로 다녀왔고,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벌써 내년의 여행계획까지 그녀가 먼저 세워두었다고 했었다.

"얼마 전에도 차가 필요하대서 내가 쉬는 날 운전까지 해서 멀리 가줬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

고맙다고 밥도 사주고 며칠간 언니한테 굉장히 친절했다며 도저히 풀 수 없는 난해한 그녀의 감정을 언니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접근하며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단순한 헛똑똑이 우리 언니'. 꿀꺽 말을 삼키고는,

"그때는 '지킬박사'가 활동할 때였나 보지."

나는 말하며 웃었다.


어제는 마냥 다정하고 입안의 혀처럼 굴던 사람이 오늘은 앙칼진 눈을 치켜뜨며 '하이드'로 변신했다.

빙의가 된 무속인이라도 된냥 칼춤을 춰대며 휘젓고 다니는 살기에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다 정통으로 한 방 맞은 언니는 그 타격감에 퇴사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성이 안 생긴 거야 언니는? 맞을 때는 엄청 아파서 멍이 드는데 며칠 지나면 상처가 낫잖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 상처는 딱지가 너무 커서 오래갈 것 같다."

하며 언니도 웃었다.




내 주변에도 꼭 한 두 명 정도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가 존재한다.

직장생활깨나 하면서 욕하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 다혈질인사람, 게으른 사람, 참 많이 봐왔지만 매 순간순간 감정이 널뛰는 변신의 귀재는 정말 피하고 싶은 부류이다.


마스크뒤에 감춰진 두 얼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점점 변해가는 인격을 경험하고 그러다 결국은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했던 영화 의 '마스크맨.'

나도 그런 사람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그것만이 나의 코딱지 만한 자존감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다정했던 그 사람 마음의 온도가 차가워진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 애썼다.

며칠을 고민해도 나올 답을 찾지 못한 나의 마음은 좌불안석이 되었다가 괜히 혼자 눈치 보며 그가 다시 나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린다.

얼마가지 못해 그 가 휘둘러대는 칼춤에 또 한 번 마음이 난타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언니오빠들이 많았던 우리 집에서 내가 소외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했다.

"야, 아빠가 너는 막내라고 우리 보고 너 잘 챙겨주라고 했었어, 너 가 부모와 가장 짧은 기간을 사는 거라고, 순서대로 사람이 간다는 가정하에, 근데 무슨 애정결핍?"




그 가 어느 정도 나보다 권력의 우위를 차지한 경우일 때는 더 그렇다.

조직에서의 소외감.

그 는 소외감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아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자신 앞에 굴복하게 만든다.

조직 안에서 편 가르기를 만들고 동료들끼리 험담하게 하여 시기와 분노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소속감과 유대감은 어느 조직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알기에 그 가 자신에게 맞게 구상하고 달성해 가는 굴절된 세상에서 밀쳐내지지 않기 위하여 그 가 내미는 손을 다시 잡고 만다.

그 가 다시 나를 조직의 반열에 올려주기를 고대하면서.

웬일인지 우리 모두는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러기로 다짐이라도 한 듯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방관자가 되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다져지고 단단해져 고정된 정체성의 틀을 바꾸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내가 가진 틀을 깬다는 것은, 마치 무방비 상태의 나를 향해 사방에서 진격하는 외부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내야 함을 의미하며, 그것은 그동안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넘어지며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가까스로 정립한 인간관계의 바탕이 잘못되었음 을 스스로 인정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틀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최소한의 생존 본능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 감정엔 다 이중성이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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