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잘 컨트롤하기
'오늘 당신은 적당한 하루를 보냈는가?'
어제 출근길 붐비는 도로에서 고생을 한탓에 조금 일찍 집을 나선 화요일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 불을 켜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밤새 눅진해졌을 실내의 공기에 신선한 바람을 주입시킨다.
'8시 50분'
"오늘 A가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오후에 출근한대."
옆 사무실 A의 동료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을 한다.
A로 치자면 배드민턴, 골프, 등산, 등 승부욕이 강한, 운동에 진심인 여자 동료이다.
한동안은 미친 듯이 골프에 빠져들어 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아쇠수지증후군'을 앓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배드민턴을 치다가 발을 접질려 복숭아 뼈에 실금이 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주말에 열리는 무슨 청장배 시합 인가를 기어이 나갔다.
발이 온전치 못해 제 실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는지 예선에서 떨어졌다며 태연하게 웃으며 돌아왔다.
또 일주일 전부터는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유튜브를 켜놓고 격렬한 운동을 따라 하더니 어제 과하게 몸을 틀면서 순간, 가슴이 뻐근해져 옴을 느꼈다고 했다.
'갈비 연골염' 나에게는 생소한 병명을 들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후에 출근을 했다.
'10시 25분'
"Are you crazy now?"
여자 상사가 소리 질렀고,
"You make me crazy!"
외국인 남 직원이 더 큰소리로 맞받아쳤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고성이 더 오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감정적으로 언성을 높이니 저 둘은 마주 보고 앉아서 어떻게 서로를 견디는지 모르겠다.
'2시 10분'
시설팀 남 직원이 무언가를 카트에 실고서 옆 사무실로 들어간다.
우당탕탕, 귓가를 울려대는 뭔가 신경질 적인 소음이 계속 들려온다.
평소에 함께 다니던 조수 없이 혼자서 들락날락 분주하다.
"아 O 같아서 회사 못 다니겠네."
우리 앞에 던져진, 그 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욕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를 보고 돌아선다.
같은 일을,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시키는 상사 때문에 열을 받았다.
'3시 정각'
B 직원의 아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아들이 왜 이렇게 힘이 세요?"
"네?... 왜요.. 우리 아이가 싸웠어요?"
잔뜩 졸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은 질문에,
"축구를 하다가 선생님 차 앞유리를 박살 냈어요."
"휴~우, 사람이 다친 건 아니죠?"
선생님이 보내온 사진을 보니 차 앞유리 전체가 금이 '쫙' 가있고 심지어 좌석시트엔 유리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가 잘하고 싶어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B는 거듭 죄송하다고, 상대방이 보지도 않는데 머리를 조아린다.
'6시 40분'
퇴근 후 남편이 그런다.
"오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받고 왔어"
남편 어깨에 네 개의 시뻘건 동그라미 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어깨가 아파서 상체운동을 쉬고 있던 남편이 참다못해 병원을 찾아갔나 보다.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고, 나이에 맞게 운동도 하는 거지, 기를 쓰고 하더니, 싶었다.
과도하게 움직인 몸이 결국은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꽤나 파란만장 한 하루를 보낸 내 마음에 '적당히' 란 단어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적당히' 란 단어는 건성건성, 대충대충, 이런 말로 대체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의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 같다.
오늘 나의 감정을 적당히 조절했다면, 나의 몸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면,
출근길 병원행도,
가슴 졸이며 받았을 선생님의 전화도,
다툼으로 인한 마음 불편함도,
없었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하루를 맞았을 것이다.
사람의 이성적이고 감정적 행동에는 '적당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또는 나의 마음에 자리 잡은 감정의 온도에, '모 와 도'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적당한' 타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한쪽으로 치우쳐가는 편협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알맞게 조절하여 표면화시킨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상대를 향하여 산탄총을 난사하는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사람의 감정에 숨어있는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트리거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처럼 수많은 일련의 문제들을 겪으면서도 오늘을 사는 이유는,
참혹한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싸우고 버티다 혼자 살아남는 패잔병이 되었더라도 전우애로 똘똘 뭉쳐 서로에게 한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되어주는 숭고함 이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