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처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다소 시간이 걸릴 뿐.

by 피노

스브스슥, 끼드드득, 휘리리릭,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자정을 넘은 시간 창호지 문 밖에서 들려온다.

잔 나뭇가지들이 서로 너울대며 부대끼는 기괴하고 흉측한 소리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스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밤새 비는 내리고 우주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베어낸 강한 빛과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어뢰와 같은 천둥소리에 집을 비우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집을 지키고 있는 잔챙이 삼 남매는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술래가 되어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었던 한낮의 술래잡기 놀이를 생각하며 두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해 본다.

감은 눈을 뜨면 전설의 고향에서 무수히 보았던 괴물들 중 하나의 눈 이 바로 코앞에 있을 듯하여 잠든 척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셋 은 침만 '꼴깍꼴깍' 삼켜대었다.

쫘악! 쩍! 우르르 쾅!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자동반사처럼 손바닥은 귀로 향했다.

잠시 후, 귀에서 손을 떼는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바로 우리 집 뒷마당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 셋은 일동 감지했다.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깼다.

아니, 감긴 눈꺼풀 위로 강한 레이저 빛을 수시로 쏘아대는 번개의 빛 때문에 순간 눈을 떴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카운팅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천둥소리는 지은죄도 없는 나의 몸과 마음을 잔뜩 웅크리게 만들었다.

침대 아래에서 잠든 남편은 세상모르게 자고 있고, 아마도 귓속에 소음차단용 보라색 폼 귀마개를 끼웠을 것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뒷마당에 제법 큰 플라타너스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기역자 모양으로 담이 둘러져있고 그 코너 안에 자리 잡은 나무는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단층으로 된 한옥기와집이었던 우리 집 안방에는 뒷마당 쪽으로 난 창호지를 바른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툇마루가 있었고 그 마루에서 내려서면 장독대와 작은 텃밭이, 조금은 낮게 쌓아진 담벼락 안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여름밤이면 앞마당으로 연결된 유리현관문을 다 연다음, 현관마루에서 안방으로 들어오는 문과 뒷마당 쪽으로 난 문을 활짝 열어젖혀 앞에서든 뒤에서든 물 흐르듯 들어오는 잔잔한 바람을 반겼다.

기분 좋은 바람이 온몸에 살포시 덮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달고 단 꿈을 꾸는 희열을 느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온종일 밭으로 논으로 쉴 새 없이 내달렸던 부모님의 노곤한 얼굴 위에 위안처럼 내려앉으면 나는 가만히 엄마의 품을 헤집고, 잠든 엄마의 광대뼈 아래 움푹 꺼진 볼을 조심스레 쓸어보곤 하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뒷마당 쪽 창호지 문 너머에서 춤추듯 흔들거리던 나뭇가지들이 악귀처럼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한 순간 또 엄마품을 파고들었고 그때 들었던 바람소리는 왜 그리도 스산하고 음산했던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어서 빨리 이 밤이 지나가길 기도했다.

아침이 되면 간밤에 내가 겪었던 비현실적이게 생생했던 체험이, 사실은 내가 만들어낸 꿈이었던 것처럼 바람 한 점 없는 고요와 잔잔한 햇살이 창호지 너머 바깥세상에서 투과되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벼락 맞은 집.

사실 벼락은 우리 집 뒷마당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맞았지만 사람들은 부르기 쉽게 그렇게 우리 집을 불렀다 한동안.

그 나무가 우리 집을 지켜준 것이라고도 했다.

나무 우듬지 가 번개에 맞아 끊어졌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각의 개성을 지닌 비바람과 눈보라를 가까스로 견뎌낸 낡고 바랜 담벼락 모퉁이가 무너졌다.

아빠는 그 참에 벽돌을 다시 쌓고 시멘트를 발라 새 담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집을 떠나올 때까지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플라타너스 나무는 몸의 일부를 소실당한 채 부모님과, 자신이 지켜낸 그 집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그곳에 서 있었다.


370평 집터 안에서 숨 쉬고 때론 부서지며 스스로 단단해졌을 모든 실물들- 감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옆집과의 경계를 만들기 위해 울타리로 심어놨던 탱자나무, 끝끝내 떠나지 못했던 플라타너스- 이런 존재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역사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이제는 그 땅을 발판 삼은 새로운 가족의 보금자리에 또 다른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 집을, 그 가족을 보호할 것이다.




실체가 없는 공허함은,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가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래서 내 마음이 더 이상 향할 곳 없는 텅 빈 들판의 떠도는 바람 같은 것일까?

내가 그리워했던 그 실체는 다 어디론가 조각조각 흩어지고 재 가 되어 흩뿌려졌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했던 헬렌 켈러의 말이 쉽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 입은 플라타너스도 인고의 오랜 세월을 거쳐 새 가지에 잎을 돋우고 본연의 제 모습을 찾았듯이, 삶 또한 힘들고, 아프고, 그로 인해 마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더라도 그 상처에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살살 달래주고, 위로해줘야 한다.

그렇게 내가 가진 본질의 감정이 조금은 아름답고 행복하게 승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내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답을 내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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