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다 좋아

그렇게 우리는...

by 피노

종자 박람회에는 볼거리도 많았지만 챙길거리도 제법 있었다.

공짜로 얻는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행사에 걸맞게 종자들을 소개하는 부스가 많을 줄 알았는데 각 지역에서 준비해 온 다양한 이벤트 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개발했다는 잡곡 한 봉지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섰고 종자 개수 맞추기 게임에 참여해서 10개 이상의 종자를 맞추고 아몬드, 피스타치오, 캐슈너트, 마카디미아, 호두 등 원하는 견과류를 종이컵에 가득 담았다.

이곳저곳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꽃을 손에 든 사람, 에코백을 든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어느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백을 받았는지의 질문에 답하면서 연신 다른 부스에 눈을 돌리느라 바쁜 모양새다.

지역 특산곡물로 만든 약과나 계란빵은 인기가 많아 같이 동행한 우리 지인들도 양손에 주렁주렁 손이 모자란다.

그런 행사장에서 뭔가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부스가 아닌 밖에 차려진 매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쌀쌀했던 며칠의 추위 끝에 반짝 찾아온 반가운 햇살에 입었던 점퍼를 허리에 두르고 시원한 공기를 마셨다.

앞쪽으로 늘어선 매대 제일 안쪽에 다육이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가던 길을 멈췄다.

언니들하고 관광지를 둘러보다 보면 언니들은 항상 꽃이나 다육이가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는데 나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꽃을 좋아하는 엄마의 피가 몸속에 흐르고 있어선지 언니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관심사를 가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염좌, 괴마옥, 축전이라는 이름도 낯선 다육이들을 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고개를 들이밀어 봤다.

내가 알고 있는 다육이들도 간혹 눈에 띄고 처음 보는 특이한 귀요미들도 눈길을 붙잡았다.

한참을 둘러보다 궁금한 몇 가지를 사장님께 물어보고 축전이라고 불리는 작은 다육이 한 개를 손에 들었다.

축전은 여름동안에는 물을 주지 말고 알맹이가 쪼글쪼글 해지면 그때 화분의 가장자리로 물을 조금 주라고 말씀하셨다 다육은 좀 작다 싶을 정도의 화분에 심는 거라는 귀띔과 함께.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신문지에 포장해 준 사장님이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가지가 잘려나간 다육이 한 개를 서비스로 싸 주셨다. 화분에 꽂아놓으면 잘 살 거라면서.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나는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나의 행동에서 예전의 언니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그 앞에서 서성대던 언니들.


여기저기 흩어진 지인들을 찾느라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맨 커다란 비닐 백안에 잔뜩 집어넣은 것 들을 서로서로 열어보며 웃어댄다.

시골 한적한 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민간정원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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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지 내에 다양한 식물, 나무, 산책로와 넓은 마당에 야외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다.


시그니처 음료로 판매 중인 온기 중탕 방식의 쌍화차를 주문하고 이쁜 창밖의 풍경이 보이는 스폿에 앉아 꽃받침 하며 사진도 찍었다.


주문하고 이쁜 창밖의 풍경이 보이는 스폿에 앉아

꽃받침 하며 사진도 찍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를 옮긴곳은 구절초 축제가 열리는 곳 이었다.

축제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입장료 5천 원을 내면 일부금액을 그 안에서 쿠폰처럼 사용할 수 있었는데 특별히 살 거리가 없던 우리는

커피와 간단한 음료 몇 잔을 들고 국화꽃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햇살아래서 꽃과 함께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니 또 예전의 언니들이 생각났다.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의 언니들은 항상 오빠의 유머 섞인 한마디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야, 니들이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냐? 엔간히 찍어대라 좀."

"하하하하"

추억이란 가슴에 박힌다는 말이 맞나 보다.

어디를 가도 끄집어낼 기억 하나씩은 존재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주 정도 일찍 왔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마음으로 여물어 가는 오후빛의 그림자를 받은 채 바람에 일렁거리는 꽃들을 만져봤다.

가을이 어느새 다가온 줄도 몰랐는데 차가운 바람끝자락이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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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키 작은 코스모스는 언젠가 무서운 마음으로 어둑해진 논두렁길을 달려 큰 길가로 나왔을 때 포근하게 나를 반겨줬던 것처럼 여전히 환한 미소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흙먼지 폴폴 날리던 그 길가에서, 여물어 가는 가을 햇살에 스러져가던 희미한 태양빛 아래 서있던 나를 감싸줬던 것처럼.

돌아갈 곳 이 있다는 안도감이 나의 오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으리라.

그때처럼 지금 어디론가 따듯한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는 안도의 숨을 나지막이 내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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