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나이를 인정할 때

단순하고 느리게

by 피노

갈대들이 지천으로 널린 산책로 벤치.

70대 정도로 보이는 어르신 세분이 앉아계셨다.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나무 몇 잎을 두툼한 니트 모자 위에 얹고서 아직은 따스한 가을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는 듯했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공원에서, 또 산책길 벤치에서 만났던 노인들 은 먼 미래의 나의 모습과, 저 나이가 되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하는 물음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부정적인 답변들로 우선순위가 나열되는 게 사실이었다.

젊음의 에너지가 상실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에서의 즐거움 따위는 사라질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들을 바라보며 느낀 나의 감정은 '평온함'이었다.

권태하고 무의 한 시간 속에서 나 스스로를 꺼낼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 불편한 구석이 있어도 외출을 위해 고른 옷을 입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경직된 미소라도 지어볼 수 있다는 것, 한쪽 부분이 옴팡하게 꺼진 오래된 소파에 앉아 연합뉴스 나 JTBC, YTN 같은 뉴스 채널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경기침체우려, 국제사회의 전쟁이나 한국은행의 금리동결 소식을 들으며 혀를 쯧쯧 차고 있지 않다는 것.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버틴 집안살림들을 마주하고 그것들처럼 낡은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대신 목적지를 정하고 집을 나설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추운 겨울이 오면 마을의 남자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는 햇빛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어느 어르신 집의 담벼락 앞이었다.

오전 내내 햇빛을 흡수한 담벼락은 적당히 따사로운 온도와 날카로운 바람을 막아주는 두 가지의 동시효과를 내는 탓에 이른 점심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구멍가게에 엄마 심부름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서면 꼭 그 집 앞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귀달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털신을 신은 꾀죄죄하고 혈색 없는 노인들 몇몇 이서 담배를 피우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는 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만히 서 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지 생활을 하던 어느 해 겨울 고향집을 찾은 나는 우연히 그 앞을 지나던 중에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여 종종걸음을 걷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그 무리에 끼어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그리곤 '우리 아빠가 문득 노인이 되었구나, ' 하는 생각에 마음 한쪽이 울컥해졌다.

베이지색도 그레이 색도 아닌 누르스름한 누빔 점퍼를 입은 아빠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초라한 노인일 뿐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여전히 그들의 걸걸한 웃음소리와 메마른 겨울바람 속으로 맥없이 흩어지던 하얀 담배연기가 스산한 풍경의 한 자락으로 떠오른다.




몸과 마음에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은 세상 모든 신을 찾게 되고 부르짖게 된다.

절실히 원하는 것 하나를 이루어주면 나머지 몇 개쯤은 포기하겠다고 매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나이가 들면 힘든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까?

그래서 저렇게 해맑은 얼굴로 모여 앉아 햇빛이나 쬐는 별거 아닌 일쯤이 실은 얼마나 감사한 줄 아느냐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어느새 중년이 된 나는 몸과 마음의 나이가 비등하다고 스스로 인정할 때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어느 날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의 회전근개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손마디가 시큰대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참 슬펐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러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를 걷고 무릎이 성치 않음 을 느끼고는 달리기는 애당초 시작도 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나의 마음은 아직 청춘이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생각하니 무엇을 해도 힘에 벅차고 무리를 하게 되어 또 다른 탈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몸에 마음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하루 두세 시간씩 하던 독서는 한두 시간으로 줄이고 주말이면 몇 시간씩 앉아 그림 그리던 시간도 단축했다.

예전 같으면 등산 같지도 않다면서 오르지 않았던 둘레길을 택해 천천히 걸으며 좋은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알레그로(Allegro) 보다 안단테(Allegro)로 생활의 리듬을 맞추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났다.

단순하고 쓰잘데 없는 것들로 느려진 하루를 보냈어도 나는 그 시간 안에 숨겨진 느림의 미학을 발견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저렇게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내일을 기약하는 일이 더 이상 나는 하찮은 일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평범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단조로운 시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모습 위에 나를 덧입히는 미래를 상상한다.

잔잔한 물결에 순풍대는 돛단배처럼 인생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나의 인생을.

그 노년의 뒤안길에서 산허리로 내달리는 빛바랜 노을을 바라보며 편안한 숨을 호흡하는 나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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