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쓰린 12월

한 달의 맛

by 피노

12월이 되면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된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는 우리는 이번 주 내내 거의 김치와 두부로 배부른 만찬을 즐겼다.

빨간 고춧가루 양념이 듬뿍 발라진 김치는 겉으로는 다 같아 보여도 어떤 속 재료를 썼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이 난다.

김장김치는 각 지역마다 특색을 가졌는데,

겨울추위가 빨리 시작되는 강원도는 11월부터 김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라도 김장법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오징어와 명태 등 해산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던 것이 생각난다.

부산에서도 해산물을 넣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 걸 보면 해안을 접하고 있는 지역들은 바다에서 나는 생물을 김칫소로 넣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 보다.




여기서 잠깐 김장김치의 유래를 짚어볼까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추운 겨울 싱싱한 채소를 쉽게 얻지 못할 것을 대비해 소금에 절인 채소를 보관하여 오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발효시켜 먹기 시작했고 그 방법이 최초의 김치 유래이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로 순무, 동아(박과에 속하는 겨울철 채소로 한 개 무게가 최대 80kg에 달하고 길이는 1m까지 자라는 거대한 열매), 가지, 미나리 등을 소금에 절이거나 간장등 소스에 담갔는데 지금처럼 복합적인 여러 재료를 넣어 버무리기보다 단순히 소금으로만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김치모습이 갖춰지고 1600년대 이후 고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김치 양념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기김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700년 대 무렵으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온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품앗이를 하며 담그는 김장김치는 마을의 큰 행사가 되어갔다.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거나 땅을 파서 만든 저장고(움)에 대량보관 하여 먹거리 귀하던 겨울 내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드디어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김치는 전 세계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으며 K 푸드의 위상에 제대로 한몫하고 있다.




시골에서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이른 아침 등교를 위해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밤새 찬 기운을 맞은 놋쇠 재질로 된 동그란 한옥문 손잡이를 잡아당길라치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어 깜짝깜짝 놀라곤 할 정도였으며 물기가 들어찬 콧속 또한 숨을 들이켤라 치면 마치 코안에 얼음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알싸하게 매웠다.

그렇게 매일매일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었다.

11월이 되면 부모님은 서서히 김장준비를 하셨다.

밭에 있는 몇백 포기의 배추를 수확하고 준비해 놓은 커다란 몇 개의 고무대야에 배추를 절이는 것으로 며칠 동안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깜깜한 밤 마당에 흐릿한 전등불을 켜고 평상을 수돗가로 옮겨 비스듬하게 세워놓고 그 위에 널찍한 비닐을 깐다.

굵은소금에 제대로 절여진 어마어마한 양의 배추를 영하의 날씨에 밤늦도록 씻어 차곡차곡 평상 위로 올리고 밤새 물기를 뺀다.

다음날이 되면 각종 채소를 다듬어 양념을 버무리고 고춧가루를 더 넣기도 하고 젓갈을 찔끔찔끔 넣기도 하면서 간을 맞추었다.

간을 짜게 드시는 아빠는 항상 싱겁다며 젓갈을 더 많이 넣길 원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젓갈과 생굴이 들어간 김장김치를 좋아한다.

그렇게 한참을 이것저것을 넣고 빼고 하면서 간을 맞추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뒷짐을 진 손에 김치통을 하나씩 들고 우리 집으로 모여든다.

대가족인 우리 식구에 동네 사람들까지 합해지면 시끌벅적한 우리 집은 금세 잔치라도 열 것처럼 들썩거렸다.

한바탕 큰 소란을 피우고 김장이 끝나면 아빠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뒷마당 장독대 옆 석류나무 밑을 깊게 파고 그곳에 커다란 장독대를 묻었다.

한 겨울 우리가 먹을 김치가 보관될 곳간 같은 곳이었다.

장독대를 묻고 그 안에 김치를 넣은 다음 비닐로 감싸주고 겨우내 한 포기씩 꺼내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김치는 온갖 찌개의 주 재료가 되었으며 그다음 해 엔 묵은 김치가 되어 아삭아삭한 식감을 유지한 채 무더운 여름 입맛을 돋우었다.

그렇게나 오랜 세월 부모님과 함께 김장을 담근 언니들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아 대물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엄마의 손맛을 따라갈 수는 없는지 2% 정도 부족한 맛 이 나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여정인 김장이 막을 내려야만 부모님은 그제야 겨울채비를 끝냈다고 한시름 놓았다.

우리의 고유문화가 된 '김장'은 서로 협력하고 깊은 유대감을 맺게 되는 공동체 마을 탄생의 원천이며 어린 나에게 세상의 고리는 모두 사람들로 연결되어 있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김장김치를 먹는 12월은 속 이 쓰리다.

좀 덜 먹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먹음직스럽게 빨간 김치가 앞에 놓이면 나도 모르게 손 이 가고 만다.

속 은 좀 아프더라도 한 해의 마지막에 즐길 수 있는 한 달 동안의 쓰린 포식을 당분간은 멈출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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