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항상 우리와
5시 45분.
아직 기척 하지 않은 깜깜한 동네에선 저 멀리 켜진 두 개의 빨간 적색 신호등과 밤새 꺼지지 않는 스터디 카페의 간판, 건물들의 외벽에 붙어있는 몇 개의 오밀조밀한 네온사인들이 초점 없는 나의 눈동자를 이끌고 있다.
거실 창가에 서서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간간히 불 밝힌 집들을 손으로 세어보니 겨우 다섯 집, 그 불빛이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른 아침, 나 혼자 이 시간에 깨어있지 않음에 괜한 안도감이 든다.
고요함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의 어둠들이 소리 없는 잔상을 일으키며 먼발치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빛은 어느 순간 그 면적을 넓혀가며 사위를 환하게 물들일 것이다.
그 안에서 어제와도 같고 내일과도 같을 내 하루의 삶은 또 시작될 것이다.
변화 없는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간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나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마치 42.195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를 조절하고 수분을 보충하며 강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메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거리의 자동차들을 바라봤다.
어느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차 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를 깨우기라도 하듯 거리를 내달리고 있다.
저들이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목적지가 있다는 것.
삶에서 내가 도달하고픈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만큼 가슴 벅찬 일이 또 있을까?
과거의 어느 때인지 나는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갈망 같은, 때로는 무언가에 대한 결핍 같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내 속에선, 두 자아가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앞으로 걷고 싶지만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던 꿈을 꿀 때처럼, 그것이 꿈인걸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며 한 발이라도 떼어보려 애를 썼던 순간과, 조금만 참고 견디면 어차피 꿈에서 깨어날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그때는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가 정확하게 어딘지 몰라서 헤매었지만, 조금이나마 그 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스스로 세운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핑계를 댈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 나의 못남을 타협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뒤에 감추고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피해나갔다.
그렇게 어떤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뒷걸음질 치다 놓쳤던 많은 기회들이, 내가 스스로 잡아내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부메랑처럼 또 나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어떤 선택 앞에서, 때로는 주저 없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찰나에 멈춰 서서 또다시 후회하고 아쉬워하게 될 미래를 떠올린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상상은 항상 더 과대하게 포장되어 끊임없는 미련과 자괴감을 증폭시킨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손에 쥐지 못할 때는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현재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간과해 버리기도 한다.
나를 피해 달아나버린, 아니- 실은 내가 붙잡지 않아 놓쳐버린 것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은 내 삶을 계속해서 과거에 머무르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백 퍼센트 옳은 일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내가 할 일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태양은 오늘 유난히 나를 향해 환한 빛을 발한다.
그 빛아래서 나는 나를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삶의 장애물이 나 스스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 빛나는 태양 아래서 나의 삶이 따사로이 무르익고 알맞게 익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