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과오
4년 차 꼬마 김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언니가 퇴근길에 전화를 했다.
"나 지금 퇴근한다."
오전 9시 30분... 오픈 후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00가 자꾸 들어가 쉬라고 성화를 대서.
페이스 톡으로 영상통화가 걸려온 건 어제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일반 전화도 잘 걸려올 일이 없는데 뭐지?
연결 버튼을 누르자 조카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잠깐 동안 이런저런 말을 하더니,
"근데 이모, 엄마 좀 다쳤다?"
언니는 가게에서 화장실을 가려다 건물로 연결된 유리문에 한쪽 광대뼈와 입술을 된통 부딪혔단다.
언니의 표현으로는 - 벽 하나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고-.
그 문은 오랫동안 닫힌 적 없는 항상 열려있는 문이었다.
그렇기에 언니는 문의 열고 닫힘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곳을 향해 돌진했단다.
광대뼈와 입술 안쪽이 부어올라 병원에 가서 생살을 째고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다.
반창고를 붙인 언니의 입술은 보톡스 10대라도 맞은 듯 부어올라 있었다.
그 와중에도 조카는 엄마의 입술이 웃기다며 피식거리고 있고 나는 속이 상했다.
조심성 없다고 한바탕 언니를 다그치고 약 잘 먹고 냉찜질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이나 말.
생각해 보니 참 많았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당연한 듯 부탁하고 강요하는 것.
나는 남편에게 이러저러 부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느 날 인가 평상시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 지인의 일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그날 남편은 화를 냈다.
이상하다 항상 어떤 부탁이든 잘 들어주고 그랬는데 남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고 화가 났다.
'힘든 일도 아닌데 왜 화를 내나' 그때 나의 마음속에 든 감정은 그날따라 유난히 구는 남편의 예민함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기분 상함이었다.
실은 남편이 그동안 귀찮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른 채.
"그럼 진작에 말을 하지."
"남의 일까지 나한테 부탁하지 말라는 말 내가 한두 번 한 줄 알아?"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랬다.
이전에도 이런 상황으로 남편과 다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자꾸 망각하니 이런 일이 생겼다.
이 사람은 다정하고 내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으니까, 항상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라는 무의식적인 나의 생각이 당연한 마음이 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언니는 앞으로 어떤 문이든 꼭 확인할 것이다, 닫혀있는지 열려있는지.
한번 된통 당한 일은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도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하는지 궁금해졌다.
습관이 덜 들여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되는 습관처럼 사람 관계에서도 서로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대가 가족이나 친한 지인일 때 더욱.
가깝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는 우리 마음이 알아서 선을 그어주지만 내가 친밀함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마음도 마치 나와 같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 버린다.
그런 나만의 판단에 의거하여 상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같은 우를 범하는 습관대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무의식에서 행해지는 나의 안이한 태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