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당신

사랑합니다

by 피노

"여보 나 다녀올게"

'탁'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

부리나케 안방 문을 열고 나왔지만 뭐가 그리도 급한지 당신은 이미 떠난 후였다.

손에 들린 하얀 편지봉투를 멋쩍게 쥐고서 괜스레 마음이 짠해져서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신발장 문을 열었다.

신발장의 두 번째 칸엔, 항상 놓여있던 당신의 나이키 운동화대신 검정 구두가 얌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몇 년 전 아들이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탄 날 우리에게 운동화를 선물하였다.

항상 바쁜 아빠를 향해,

"이제부터 엄마랑 산책도 좀 하고 여행도 다니고 하세요"

어느새 다 커버린 아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당신이 며칠간 집을 비운사이 나는 당신과 함께 했던 즐겁고 때로는 힘겨웠던 지난날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새삼스럽게 당신의 빈자리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당신 혼자 이렇게 집을 떠난 적이 없어서였을까?

그날이 생각나네.

"동창들이 이번에 여행을 가는데, 그동안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곤 했었는데.....이번에는 한번 갔다 올까 해."

사업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냈고 거래처가 늘어나고 신뢰를 받으면서 좀 더 일에 대한 욕심을 내다보니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당신이었다.

"그래요,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때 말렸어야 했나?

'남자들끼리 여행은 무슨 여행, 그냥 자기들끼리 다녀오라 그래요'

그동안 매번 거절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당신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의 3박 4일을 기대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당신이 우리 가정을 위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면서 혹시나 내가 당신의 여행을 부추기지나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랬다면 나는 나 자신을 평생 원망하며 살 것 같았다.




당신으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영상 안에서 당신과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나이 든 남자들은 개구쟁이처럼 웃고 마냥 신나 보였다.

나는 그렇게나 활짝 웃는 영상 속 당신의 얼굴을 보면서,

'당신도 밝은 사람이었구나, 눈가에 주름이 자글거릴 정도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당신이 보고 싶었다.

어서 빨리 내 앞에 앉혀놓고 무슨 말이라도 해서 당신을 그렇게 활짝 웃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동안 짜증 내고 무심하게 행동했던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어영부영 없애버리고 싶었다.


"뭐 사갈까?"

'됐어요, 필요한 거 없어요' 하려다가,

"이쁜 가방 하나 사다 줘요 화사한 걸로."

"오케이."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탓인지 당신은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쳐 보이고 들떠있었다.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며 나도 좋았다.

"다음번에 꼭 우리 가족끼리 오자"

혼자 떠난 여행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당신은 큰 소리로 말했다.




'태국 방콕을 출발해 전남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한 항공기가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항공기는 크게 손상됐고 현재까지 28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신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하얀 편지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던 5만 원권 6장과 반으로 접힌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여보, 모처럼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라고 들떠있는 당신을 보니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항상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힘든 내색 하지 않았던 당신에게 고마워요.

며칠간의 여행동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맘껏 즐기고 오세요.

사랑해요'


지인의 남편께서 무안 공항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날 사고를 당하신 모든 분들과 그 유가족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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