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힘들었다.

by 피노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미국과 이란의 전쟁통에 기름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고 정부는 그런 중에 자동차 5부제 운행을 실시해 그나마 닥쳐온 위기를 넘겨보려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야 했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이 스산히 분다.

사람이 많을 걸로 예상하고 도착한 버스정류장은 텅 비어있어 이상하다 생각하며, 나 혼자 버스를 타는 건가? 하고 외로이 서있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도착하려면 아직 7분이나 남았고 정류장 유리문 사이로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내 얼굴을 할퀴며 가고 오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 도착 2-3분 전이 되어서야 맨다리에 짧은 교복치마를 입은 여학생들 몇몇 과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패딩 점퍼 깃을 연신 감아쥐며 여학생들을 바라보니 그 아이들은 희디흰 다리를 드러내놓고도 추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만 연신 들여다보고 있다.

맨 앞에 서있으면 자리라도 잡을까 싶은 꾀가 들어 앞자리를 차지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잠시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그로부터도 약 5 분정도가 지나고서야 저 앞에 코너를 돌아 나오는 버스의 앞머리가 보였다.

내 옆에 애매하게 서있던 사람에게 고수했던 앞 순서를 빼앗기고 잽싸게 올라탔더니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이다.

사람들을 제치고 뒤로 가기도 벅차서 앞부분에 서있는 기둥 하나를 부여잡고 덜컹거리는 버스의 방향에 따라 갈피 없이 흔들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 발에 힘을 꽉 주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을 휘 둘러보니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다.

하필 출근시간이 아이들 등교시간하고 겹친 덕에 자리에 앉을 생각일랑 아예 접어야 할 판이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있거나 무표정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현대인의 피곤한 삶이 엿보이는 듯했다.

공부를 하는 아이도, 직장에 나가는 어른도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삶이 피곤한 건 사실이니까.

창밖에 스쳐가는 풍경사이로 성질 급한 벚나무는 어느새 꽃망울을 터트리고 간간히 비쳐드는 햇살아래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한다.




차를 직접 운전하여 출근을 할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새삼 눈 안에 들어오며 조금은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는 도시의 숨은 곳곳을 안내라도 하듯 이쪽 길로 들어갔다 저쪽 길로 나가며 수도 없는 길을 헤매고 다녔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선 거리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좁은 나만의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에서 십 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아침에 집을 나서 항상 같은 노선으로 차를 몰고 같은 길을 되짚어 다시 회귀하는 반복적인 생활이 마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아니, 벗어날 수 없는, 벗어나서는 절대 안 되는 버스의 노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는 순간 여러 사람의 하루는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잃어버리면 내가 서있는 이곳이 어디이고 언제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막막한 시간 안에 갇힐 수 있는 것이다.




75번 버스를 타면 내가 내려야 할 곳에 정확히 나를 데려다주는 것처럼 인생도 그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누군가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정해준 나만의 인생노선이 있다면 시키는 것은 나름 잘하는 나 같은 사람은 조금 편하고 단순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 각자마다 그런 정해진 노선들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면 서로 아등바등할 일도, 남의 것을 빼앗으려 아웅다웅 다툴 일도, 매 순간이 경쟁인 아이들의 삶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direct로 가는 대신 복잡한 노선에 짜여 수없이 많은 정류장을 거쳐 힘들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처럼

나는 지금 인생의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고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별다른 종착지 없이 매번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도는 순환버스처럼 어제의 내가 오늘도 같은 곳에 갇혀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이 순환버스라면 나는 20대 아니면 30대의 어느 한 날로 돌아가 멋들어지게 삶의 계획을 다시 세우고 이맘때쯤 내려야 할 나의 목적지에서 폼나게 내리고 싶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느 정류장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내린다.

고등학교 근처다.

그제야 나는 뻐근해진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잠에 빠진 것 같던 아이들이 본인들의 목적지에서 정확히 내린다.

'너희들은 이미 가야 할 곳을 향해 가고 있구나'

버스에서 내려 가방을 짊어진 아이들의 뒷모습이 쾌활하다.

그렇지 아이들의 모습은 저런 거지.

친구들과 재잘대며 장난치고 때로는 싸우며 그렇게 인생을 배워가는 거지.

아이들이 빠진 버스 안은 적요만이 감돌고 이제 어른들은 그들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도 목적지를 앞에 두고 재빠르게 stop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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