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헬드의 <돌봄: 돌봄 윤리>를 읽고
돌봄 윤리는 인간을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적, 이성적, 독립적이며 합리적 인간을 상정하는 전통적 윤리관과는 다르다. 모든 인간은 아기일 때부터 나이가 들어서까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기에 ‘합리적’ 선택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선택하지 않았어도 그러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평등하지 못하고 독립적일 수 없으며 의존적이게 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돌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은 누구든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아준 사람도 언제까지나 돌봄을 행하기만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돌봄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책에서 돌봄 윤리의 ‘관계적 인간’을 비판하는 시각도 제시한다는 것이다. 돌봄은 장려되어야 하지만 돌봄이 너무 앞서 나가 과도한 헌신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돌봄 제공자뿐 아니라 돌봄을 받는 대상자의 경험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비판적 시각은 돌봄 윤리 개념 자체의 문제보다는 사회적 지원이 부족해 벌어지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돌봄 윤리는 자애심, 자비와 같은 미덕으로만 간주되면 안 되며 돌봄 관계를 강조한다. 돌봄을 더 잘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만이 돌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돌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관계란 개인이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종류의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같이 서로 돌보게 되지만 좋든 싫든 놓기 어렵고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이런 돌봄 관계를 가족, 친구 등 개인의 인간관계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공적 영역까지 확장해서 본다.
또한 선한 의도와 자비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돌봄을 받는 사람의 욕구와 인식을 왜곡한다면 진정한 돌봄이 아니다. 지나친 헌신만을 하는 것도 좋은 돌봄실천이 아니다. 돌봄실천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며 상호존중과 상호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 돌봄인이 되는 길이다. 저자에 따르면 돌봄은 하나의 가치이며, 돌봄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다. 이때, 타고난 심성보다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타인에 대한 민감성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누구든 배울 수 있는 자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