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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Mar 18. 2024

종말이 다가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를 보고

수술 후 쉬는 동안 며칠에 걸쳐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라는 미국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이상한 외계 행성이 지구로 점점 다가오는 바람에 지구 종말까지 7개월 정도밖에 안 남은 시점이다. 마지막 회까지 지구 종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세상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로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욜로족처럼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대세가 된다.


캐럴은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무료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캐럴의 나이 많은 부모님이 오히려 더 신나게 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듯 보인다. 간병인으로 나오는 남성과 나중에는 셋이 다자연애도 하는 것 같다. 반면 캐럴은 혼자이다. 목소리도 성우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건지 느리고 단조로운 톤에 무미건조한 목소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캐럴은 높은 빌딩 한 층에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수상한 회사를 발견하고 취업을 하게 된다. 회계 부서라고는 하는데 무슨 회사인지, 바깥세상은 난장판인데 왜 다들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다들 서로 이름도 모르고 말도 걸지 않고 일만 한다.


하지만 캐럴은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 외우려고 노력하고 말을 건다. 그런 캐럴이 안쓰러워 말을 받아주는 친구 하나도 드디어 사귀게 된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 점점 친해지게 되면서 캐럴은 활기를 찾는다. 제일 친한 3인방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도 점점 친해진다. 나중에는 회사 사람들 전체가 퇴근 후에도 따로 펍에서 만나 노는 등 다 같이 정이 드는 사이가 된다. 사람들의 변화를 수상히 여긴 회사 인사과에서 조사도 하는데 캐럴이 변화의 주동자임이 밝혀진다. 여담으로 모두와 거리를 두던 차가운 인사과 직원도 캐럴과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사람들에게 애정이 생기고 끝내 눈물을 흘린다.

캐럴의 변화가 인상적이다. 원래 캐럴은 회사를 다니는 걸 숨겼다. 부모님 앞에서 즐겁게 지내는 척하려고 서핑을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도로에만 나가도 광란의 밤처럼 세상을 즐기는 오토바이족과 흥분한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무엇을 할지 몰라하던 캐럴이다.


그런 캐럴도 나중에는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서핑을 하러 세계여행을 다닌다. 친구들의 여행을 모티브로 한 책도 나온다. 서핑을 하기 완벽한 파도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도 하는데 여행을 할수록 완벽과는 멀어져 실망한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한 바다의 파도가 사실 완벽한 파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랑새를 찾아가는 동화처럼. 이 과정을 보여주던 회차가 나에게는 제일 좋았다.

또 성격도 다르고 서먹했던 언니와 캠핑을 떠나 가까워지는 모습이 나오는 편도 있다. 한 편 한 편 캐럴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종말을 앞두고 오히려 평온하게 지내며 주위 사람들과 관계도 돈독해지는 캐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 종말은 거창하지만 죽음까지 7개월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캐럴이 선택한 회사는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루틴을 지키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주어진 회계 업무를 하기 위해 계산기와 컴퓨터를 두들긴다. 등장인물 중에서도 그 키보드 타자 소리가 안정감을 준다고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이 계속해오던 일을 하는 자세. 나만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 난장판인 상황 속에서도 안정감과 성취감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루틴을 유지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적당히 새로운 취미에도 도전을 하는 것. 볼수록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캐럴은 현명하게 종말에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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