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인으로 주재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한 지 넉 달째 되던 즈음, 그날 아침에도 출근길 운전 중이었다. 거주지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45 킬로미터였고, 아우토반 두 개를 거치는 코스였다. 회사로 가기 위한 국도로 연결되는 아우토반 출구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 있던 승용차가 속도를 줄이는 것을 인지하고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내가 차선을 변경하는 순간에 그 차도 같은 차선으로 변경하고는 여전히 내 앞에서 주행하는 것이었다. 한두 차례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그 차는 내가 회사 방향 출구로 우회전을 시도하자 급하게 우회전하여 다시 내 앞을 가로막으며 속도를 줄이는 것이 아닌가. 이때부터는 겁이 났던 것 같다.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고,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 공터에 이르기까지 그 차는 속도를 줄이며 정차를 유도하고 있었다. 정차한 그 차 옆으로 내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생각으로.
검정 가죽점퍼 차림의 덩치 큰 중년 독일 남자 2명이 그 차에서 내렸고, 그중 한 명이 내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뭐라 말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채, 조심스럽게 창문을 조금 내리고는 무슨 일이냐고 영어로 물었다. 독일어로 뭐라 말하면서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Polizei (영어의 Police와 같다) 신분증 같아 보였다. 순간 속으로 “독일에도 사복 경찰이 있었던가?”라는 의구심, 내가 아우토반에서 뭔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싶은 불안한 생각, 그러면서도 이 분들이 경찰이니 적어도 나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뒤섞이고 있었다. 내가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고 말하자 영어로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들이 나의 한국 여권과 독일 운전면허증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정말 경찰이 맞는지 물었고, 근처의 OO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회사 변호사를 불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런저런 대화가 길었는데 상황을 요약하면 이랬다. 내가 과속을 했기 때문에 잡았다는 것이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아우토반 구간에 시속 120 킬로미터 속도제한 표시가 두 지점에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이 회사로 가는 출구 몇 킬로미터 전이었다.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없는 구간이 많고, 차들이 워낙 고속 주행을 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 운전에 신경 쓰고 있던 터였다. 그날 아침 출근길에 서울의 본사에서 급한 업무 전화가 걸려와 핸즈프리로 십분 넘게 통화가 있었고, 그 차가 내 앞을 가로막기 조금 전에 통화를 마쳤던 것 같다. 일반 경찰이 아닌 암행 경찰이었던 것이다. 과속 중이던 내 차를 뒤따라 오다가 증거를 남긴 후에 내 차 앞으로 들어와서 자기들 차를 ‘따라오라!’ 했지만, 내가 그 지시를 무시하고 요리조리 도망 운전을 했기 때문에 죄가 크다고 했다. ‘따라오라!’는 지시를 언제 했냐고 물었더니 자신들 차 뒷 유리를 보라고 했다. 뒷 유리 안쪽에 LED 사인보드가 있었고, 빨간색 글씨로 ‘Folgen’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반복되고 있었다. Folgen??? 독일 생활 4개월 째였던 당시 나의 독일어 능력은 1부터 100까지의 숫자세기와 간단한 인사말 정도였기 때문에 Folgen이란 단어는 알지 못했다. Folgen은 영어의 Follow와 같은 동사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이 그 사인을 표시하며 내 차의 정차를 유도했을 때, 난 그 표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저 나의 주행을 방해하는 이상한 차로 생각하고 차선을 바꾸어 회피 운전을 했던 것이다. 그들 눈에는 분명 내가 도주 운전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미국 같았으면 경찰 총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날 360유로의 벌금과 벌점 2점, 운전면허 정지 1개월로 상황이 종료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벌점 8점이면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한번 취소된 운전면허는 현지인들조차 회복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들었다.) 제한 속도 시속 120 킬로미터 구간에서 나는 시속 160 킬로미터를 넘어 과속했다고 했다. 그 정도면 현장에서 면허 압수 당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당할 수도 있지만,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교통 법규 위반 기록이 없어서 그 정도로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고 회사 변호사가 알려 주었다.
단어 한 개를 알지 못해서 자칫 심각한 범죄자가 될 뻔했던 이 날 사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과속 운전이야 더 조심하고 주의 운전을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어가 문제였다. 독일 법인 근무를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 일로 충분히 바쁘게 살고 있는데 독일어 공부까지 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고민 끝에 일단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일을 하러 독일까지 왔는데, 독일어 단어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과외 선생을 급하게 구해서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받는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던 계기는 그러했다. 우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새로운 언어를 현지에서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독일의 사회,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함께 일하던 독일 직원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도움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막연히 독일어 공부를 효용성 관점으로만 저울질했을 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잦은 장거리 업무 출장으로 초기 의욕만큼 독일어 실력을 키우지는 못했지만 (A-1와 A-2를 마치고 B-1 단계를 시작할 무렵 독일을 떠나게 되었다), 자칫 큰 사건이 될 뻔했던 그날의 무의식적 과속 운전은 내가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우연한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서 24시간으로 나누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표를 만들어 책상 앞에 붙여두곤 했다. 학교 가느라 잠에서 깨던 시간을 ‘기상’이라고 써 놓고선 방학 동안에도 늦잠자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의미의 계획이었다. 몇 시에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며, 친구를 만나고, 방학 숙제를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자는지 등 하루의 일과가 마치 학교 교실에 있던 수업 시간표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방학 동안 얼마나 그 하루 계획표대로 생활을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으니 가끔이라도 마주치면 자기가 만든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일말의 순진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 죄책감이 계획표 실천의 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 만든 생활계획표였고, 그 계획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있었을 테니 방학 동안이라도 성장의 동력은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의 방학용 하루 시간계획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이미 만들어진 계획을 받기도 한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목표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과정을 만들어 보는 것일 게다. 학생일 때의 계획은 주로 진학이나 성장에 관한 자신과의 약속을 담아 만드는 것이 많다. 학교 교육 제도라는 틀은 학교의 학생들이 건강하게 정해진 과정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학교를 떠날 때까지 가르치고 보호하는 역할 수행을 위한 계획을 가진다. 그 속의 학생들은 이미 정해진 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각자의 계획을 만든다. 자기의 계획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고, 지켜지지 않은 계획의 결과라도 자신과 타협하거나 수용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한 학년 과정을 마치면 나와 동급생 모두는 다음 학년이 된다. 성적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등록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일도 물론 없다.
학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계획의 의미와 그 영향력이 학생 때와는 차원이 달라진다. 우선 사회는 학교처럼 그 안의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명확하게 정해진 틀이 없다. 취직을 했다면,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의 같은 반 친구들 같은 존재가 아닌, 나보다 서열이 높거나 동급이거나 아래인 계급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학교에서는 과목 시간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과목의 수업을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동등하게 공부하지만, 직장에서의 조직원은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각자 정해진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상사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할 뿐이다. 직장이라는 사회 조직의 계획은 학교의 그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시간제한적이다. 직원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 이미 모든 것이 사업 계획이나 경영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있다. 내가 세울 수 있는 계획은 업무를 얼마나 빨리 해 낼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상사로부터 인정받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부분 초점이 맞추어진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직장에서는 계획이 지켜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직장 전체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구성원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구성원 개개인의 계획은 각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정해야 하거나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계획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저 하루하루 바쁘고 피곤한 직장 생활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왜 바쁜지 알지 못해도 바빠야 마음이 편함을 느낀다.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지, 그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의 성장을 위한 나 만의 계획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가끔 의문을 가져보지만 금세 바쁜 일상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계획에 없는 나와 마주치는 많은 순간이 우연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우연의 순간들이 나의 관심과 반응할 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나의 관심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더 많은 우연의 의미를 알아채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나는 출근길에 하루 일과를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습관을 가졌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얼마나 성장하고 싶은지,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은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떤 삶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같은. 그래서 나의 관심이 어떤 우연의 순간을 만나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되면, 때로 내 삶의 희망과 활력이 되는 계획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출근길 우연한 과속 사건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나의 경우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