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21세기 시선
아버지는 자식의 뿌리이다.
그러니 며느리인 나는
남편이
아버지와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25년 추석이다. 연휴기간이 자그마치 10일이다. 초등 아이들은 이 기간을 가방이라고 불렀다. 가을 방학.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친정 동생에게서 부탁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일이 있어서 그러니 친정을 먼저 다같이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해서 추석 전 기간을 친정에서 즐겁게 보냈다. 시댁에는 시아버님이 홀로 계신다. 제작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제사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명절때마다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추석 전날 친정에서 함께 준비한 제사 음식을 가지고 추석 당일 새벽에 출발해서 시간맞춰 시댁에 도착했다.
시아버님은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어쩔 수 없이 혼자 시어머니 병 수발을 드셨다.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하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아프신 동안 며느리인 나는 전화도 잘 드리지 않았고 경제상황이 나빠져서 뭘 챙겨드리는 것도 없었다. 시아버님은 이런 나에게 굉장한 서운함을 느끼셨고, 그 서운함은 아들에게로 전이 되었다. 안 그래도 서로에게 쌓인게 많던 남편과 시아버님의 관계가 나로 인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시아버님은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꿋꿋이 잘 지내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 식사도 좋은 것으로 챙겨 드시고 운동도 꾸준히 하신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럴수록 더 잘 챙겨드리고 가깝게 지내야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서슴없이 사다달라고 하시고 해드린 것 중에 마음에 드신 것이 있으면 꾸준히 그것을 해드려야 한다. 원하시는 걸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경제적인 상황에 늘 발복을 잡히며 살다보니, 되도록이면 말을 조심하게 되고 심지어 전화드리는 것 조차도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말을 줄이고 관계가 불편해지면 그로인해서 경제가 더 돌지 않는 건 알지만, 안그래도 마땅치 않아 하시는 상황에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느리인 내가 잘 못해 드리니 시아버님의 서운함이 도를 넘었고, 그 분노는 안그래도 맘에 안 드셨던 아들에게 고스란히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추에 시댁에서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며 시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사상에 음식을 놓을 때는 홍동백서를 잘 지켜라. 팥시루를 준비해라. 옛날 가마솥 뚜껑에 부치던 그런 큰 전을 준비해라."
제사를 지내고 시어머니를 모셔둔 추모공원에 갈 차편에 대해 얘기하다가, 이번 추석에는 친정에 먼저 들렀다는 말씀을 드렸다. 시아버님께서는 역정을 내셨다.
"시댁이 중요하고 시댁이 우선이니 앞으로 명절에는 절대 친정에 먼저 가는 일 없도록 해라. 시댁을 뭘로 보고.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애가 다 지켜보고 있는데, 너희들도 나중에 나처럼 이런 수모 겪지 않으려면 미리 애 교육을 잘 시켜놓도록 해라."
이번 추석을 지내며 가수 이승환님의 가족 이라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시부모님은 맏아들의 뜻에 따라 믿고 결혼 허락을 해주셨지만 나는 시부모님의 기대에 턱없이 모자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맏며느리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부족한 실력으로는 경제적 여건이 쉽지가 않았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다 보니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얽히고 섥히면서 세월이 흘렀고, 그사이 시어머니는 암으로 황망히 돌아가셨다.
이번 추석을 지내며, 며느리 역할이 중요함을 느낀다. 사람 하나가 집에 식구로 들어올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서로의 마음 가짐은 어떠해야 하며, 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경제가 일어나는 것으로 눈에 보이게 실력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의 뿌리이다. 특히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는 오랜 시간 동안 골이 깊었다고 한다. 그러니 남편과 시아버님이 서로 아끼고 신용하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으려면 며느리인 나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가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추석을 계기로 돌아보니 며느리로서 나는 시아버지의 눈밖에 아주 난 것 같다. 시댁을 향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가 키운 판인 것 같아 남편에게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의 뿌리이다. 그러니 며느리인 나는 남편이 아버지와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한다. 내 실력이 키워지고 품이 넓어지고 말랑해져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편이, 자신의 뿌리인 아버지의 애정과 인정을 오롯이 받아서, 기운이 펄펄 살아나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펼칠 수 있게 되기를.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시고 시아버님께서 한 없는 행복을 느끼실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