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2차를 완료하고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면서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아침까지 최상의 컨디션이었으나 백신 접종 후에는 여지없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침대에 자리 보존을 하고 있노라니 할 일이 태산인데 답답하기도 했다가 강제 휴가를 떠난 기분도 들었다가, '그놈의 코로나'라는 생각에 화도 나고 감정 기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감정 기복도 백신 부작용이던가? '맞지 말 걸' 후회도 하며 꼬박 이틀을 앓고서야 일상 복귀를 할 수 있었다. 일상 복귀를 하고 나니 2차 접종을 완료했다는 뿌듯함이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만들고, 유명한 대사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지 말입니다'를 되뇌게 된다.
사서 고생을 하지만 비싼 값으로 고생을 사보면 엄청난 가치가 숨어있는 명품일 때가 종종 있다.
백신 하나 맞고 명품을 운운하다니?
코로나 백신 접종 경험이 인생 성공의 기반이 된다기보다는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고생'은 두려움이라는 극 복의 코드가 숨어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석탄이 다이아가 되기 전 '고온, 고압'이라는 코드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백신을 맞고 고열이 떨어지지 않을 때, '3시간 뒤면 내립니다'라는 등의 확실한 결과치가 있었다면 두려움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약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든 원인은 바로 '예측 불허'에 대한 공포였을 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라고 걱정 또는 의구심을 갖는 마음의 기저에는 고생을 하고 있는 주체의 두려움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길들이는 대상이다
요즘 주변에 보면 본업 외에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초집중의 힘을 믿고 해내면 된다'라고 자기 계발서들에 쉽게 쓰여 있지만 그 초집중이 쉽지 않은 이유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 경우가 많다. 쭉쭉 밀고 나가다가 멈추고 다시 일어나 또 가다가 멈춰 서길 수차례 반복하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한다. 본업도 제대로 못하면서 뭘 또 다른 일을 시작한다고 그러느냐는 자신에 대한 핀잔은 덤으로 오는 불안요인이다.
꾸준함은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하지만 두려움의 에너지가 불안이라는 먹이를 먹고 자라면 작심삼일은 예삿일이 된다.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나를 쏟아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꾸준함은 멀어지고 성취도 성공도 남의 일이 된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할 자신이 없어요'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이솝우화에 때리면 점점 커지는 사과가 나오는데 두려움도 그 사과와 같다. 극복하려고 때릴수록 더 커지는 느낌이 든다. '두렵지 않아! 무섭지 않아!'라고 주문을 걸어도 두려움은 더 커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두려울 지라도 오늘 내가 할 일을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음 가짐이 훨씬 효과적이다.
코로나 시대에 '사서 고생'은 필수라며 'N잡'에 대한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는 반면 좌절과 두려움에 무기력해져 있는 경우도 정말 자주 접한다. 내가 시작한 일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만 보면 매일이 좌절이지만 시작하고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나만 바라보면 또다시 내일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작은 성취들이 모여 좋은 에너지로 키워지면 두려움은 어느새 길들어 추진력을 보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