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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인 May 25. 2023

연애 시즌 2

연애 시즌 2


퇴사가 아니면 절대 피할 수 없는 2022년 1기분 법인 부가세 신고와 상반기 결산 자료를 준비하며 올해의 절반이 지났음을 실감한다. 불쾌지수 최고인 꿉꿉 끈적한 장마철, 내 몸 맞춤 쾌적한 실내 온도로 설정하고 야근하는 여름밤이 싫지만은 않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반이 지나버렸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아쉬운 푸념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어떤 하루도 내 몸으로 겪어내지 않은 날이 없는데도 습도 먹은 무거운 공기처럼 나이에 대한 묵직한 미련은 에어컨 제습 기능에도 제거되지 않는다. 쫓기듯 치열하기도 느슨히 놓아버리기도 했던 밀도 차 높은 시간들을 지나 지금의 나는 ‘연애 시즌 2’를 보내고 있다. 속마음을 금방 들켜버리는, 세심한 변화도 쉽게 눈치채는 나 자신과의 연애다. 자동 녹음된 음성통화를 다시 들으며 가슴 두근거리거나, 부끄러운 일이 떠올라 이불킥하며 잠 못 들 날은 없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말을 해 주면 안될까?” 비수처럼 꽂히는 상대의 말에 이해 받지 못한 억울함과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하고 안전한 나와의 연애 중이다.


점차 완벽하게 나를 알게 되는 것은 ‘의’ 요소를 갖추는데 특별히 유용하다. 8-90%를 온라인 쇼핑에 의존하는 구매 패턴상, 상세하고 정확한 신체 치수 파악은 사이즈 실패율 0에 가깝게 해준다. 민소매 디자인의 경우 암홀은 19(센티미터)가 마지노선이다. 20부터는 암홀이 넓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스커트 허리 단면의 경우 32가 딱 좋다. 32 미만이면 식사 중 지퍼를 남몰래 내려야 할 수도, 34 이상이면 걸을 때마다 허리선이 돌아가 앞뒤를 체크하느라 귀찮다. 데님의 경우 총장 87이 복숭아뼈에 닿는 정도로 기장 수선 없이 바로 입을 수 있다. 정장 바지의 경우 힐을 신기도 하니 90까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수선비가 드는 슬픈 단신이다. 20대 중반부터 15년 동안 임신 시기를 빼고는 몸무게에 큰 차이가 없다지만 분명 나만 아는 체형 변화는 있다. 임신 기간 중 골반이 정말 벌어지는 건지 하체는 더 이상 55가 아닌 55반이란 걸 받아들인다. 구두는 230에서 235로 ‘발볼 넓힘’까지 선택해야 편한 지금의 나, 내 몸이다. 한결 같아 보여도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기록하며 오차 범위를 줄이고 100% 나와 가까워지는 것이 즐겁다. 


“요즘 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 다들 성에 안 차!” 불특정 대상에 대한 투정인 듯 부녀를 향한 경고인 듯 말하지만 진심이다. 나랑 연애하듯 좋아지는 감정에 당황스러워하다 온전히 애정 때문은 아님을 깨닫는다. 계획에 없던, 외부 요인으로 인한 잠시 멈춤에도 차질이 생길까 덜컥 겁부터 먹는 소심한 나에게 ‘옜다 응원이다’ 힘을 실어주려는 따뜻함이다. 또래 사이 인기도 보다 등수에 연연하며 스스로 웃음을 작게 했던 10대, 연애도 꿈도 절절한 가슴앓이 한 번 없이 주어진 현실에만 충실했던 20대, 결혼과 출산 후 워킹맘-직장맘 이름표를 달고 바란 적 없는 칭찬과 격려에 취해 자기를 잊었던 30대,,, 나를 더 일찍 알고 깊이 사랑해야 했던 시기들을 놓쳐버린 아쉬움과 미안함 때문이라도 시간을 쪼개 열애 중이다. 


매년 진행하는 일반 건강검진에서 올해는 몇 개 항목에 개선된 결과가 보여 반갑다. 공복 혈당은 여전히 ‘주의’에 해당하지만 수치가 많이 낮아져 안전 기준 ‘100미만’에 가까워졌다. 자주 기록된 ‘고콜레스테롤혈증 의심’이라는 익숙해진 소견도 이번은 빠져있다. 고밀도/저밀도콜레스테롤뿐 아니라 총콜레스테롤 모두 정상 수치 안에 들어 있다. 주 1회뿐이지만 체력을 끌어올려 달리는 7km가 나이테처럼 몸 안에 정확히 기록되고 있었다. 몸에 꼭 붙는 운동복과 러닝화 착용, 터질 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땀이 흘러내려도 아무렇지 않은 50분 홀로 달리기에서 나만 아는 반전 매력을 찾는다. 애정을 주면 줄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나와 백년가약, 아니 앞으로 더 행복할 연애를 꿈꾼다.


July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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