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눈 속에 하린이가 있네?” 한참을 둘이서 끌어안고 놀다 빤히 내 눈을 쳐다보며 한 아이의 한 마디에 순간 모든 것이 정지 화면이 된다. 연인에게 고백이라도 받은 듯, 깜박임도 없는 아이의 시선을 결국 내가 먼저 피하며 품에 꼭 안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아이는 자기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모두 말로 내뱉어야 실체가 되는 듯 하루 종일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때부터 나도 아이의 어록이라 소제목을 달아 기록하고 잊으면 아까운 말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바로 저장해두었다. 기록 덕에 이 표현도 아이가 꽉 찬 24개월, 8년 전 지금의 계절과 같은 5월 내 가슴을 뛰게 한 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평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존재가 엄마이기에 아이는 애정 어린 시선을 나에게 고정하다 내 눈동자에 비친 자기의 웃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동시에 난 꽃잎처럼 부드럽고 작은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표현이 소중하여 기록으로 그 순간을 멈춰 세운다.
가장 행복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모두 프레임 속 정지된 사진 한 컷으로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연결되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지만 그 순간의 표정과 동작만으로 행복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은 우리 가족에겐 ‘True’다. 디지털카메라가 필름카메라를 완벽히 대체하기 전까지 사진(현상)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아빠 덕에 남매 각자의 이름으로 라벨을 붙인 앨범이 A부터 G를 넘어 책장에 빼곡하다. 앨범 속 시간의 흐름대로 꽂혀진 사진에는 즐거운 때가 아닌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미운 모습, 부끄러운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한 장 한 장 앨범을 넘겨 보는 우리는-당사자마저도- 하나같이 웃고 우스워한다. 자연농원(지금은 에버랜드) 귀신의집에서 막 나와 눈물범벅으로 포토존 보드에 억지로 얼굴을 내민 모습, 공원에서 넘어져 반쯤 사라진 아이스크림을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우는 모습,,, 사진 속에는 분함과 서러움이 가득한데 그때를 추억하며 웃고 있다. 분명 귀신의집 기념 촬영 후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 “다 가짜 귀신이야”라며 두려움을 쫓아주고, 넘어진 나에게 달려온 엄마는 새 아이스크림으로 “눈물 뚝” 하며 달래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춘 사진 한 컷은 추억이 담겨 있어 소중한 것만은 아니다. 렌즈를 눈에 대고 숨마저 잠시 참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그 따뜻함과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심심할 새 없이 피는 꽃이 좋고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초록이 좋은 사십 대라 하루가 지나가는 것조차 아까운 봄날이다. 벚꽃 구경 이후 한참을 사진 찍은 일 없이 보냈다는 아쉬움에 주말 나들이를 계획한다. 내가 노는 걸 그리 샘내는 게 누굴까? 다 늦어 아이의 코로나 확진, 격리 해제일 한나절을 앞두고 나의 릴레이 확진으로 봄의 절정을 느껴야 할 2주는 날짜도 흐릿하게 뭉그러져 4월 말~5월 초를 맞이하게 했다. 풀-백업된 노트북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거실 창밖 전망 좋은 명당에 앉아 목 긁는 소리를 반복하며 업무를 한다. 노트북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초록으로 물든 산과 맑은 하늘을 액자 속 사진처럼 바라본다. 시작하면 쉽게 그치지 않는 기침으로 늑골이 뻐근하고 목 안에 불덩이가 걸린 듯한 인후통에 괜히 서글프다. 그러면서도 바깥 풍경을 한참 바라보고 노트북 주위를 천천히 정돈하며 내 지금 자리에서 애정과 위안을 찾고 있다. 잠시만 눕고 싶은 마음을 떨치고 더 꼿꼿하게 앉아 있는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 서러울까? 아니란 걸 안다. 내 인생 첫 재택근무라는 역사적 순간, 유의미한 경험으로 기억될 테니까.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몸이 갇혀있는 동안 애정 하는 대상을 쫓아 분주히 시선을 보낸다. 7시 30분 첫 모닝 알람에 목소리로만 알람을 끄고(“Hey 구글, 알람 멈춰!”) 몸을 일으킬 의지는 전혀 없는 부녀의 모습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알람에 겨우 일어나 아이는 안방 침대에서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 평범한 아침 인사를 나누는 소리를 이미 업무를 시작한 나는 거실에서 듣고 있다. 평소라면 내가 집 안에 없을 시간, 몰랐을 장면을 눈을 크게 뜨고 사진처럼 찍어둔다. 오늘 내 눈동자에는 하교 후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자기를 반겨주는 목소리에 콧잔등과 인중에 땀이 맺힌 채 신이 난 네 얼굴이 비치겠지. 코로나 덕에,,,라는 생각이 잠시 드는 걸 보니 인후통이 좀 나아졌나 보다.
May 07,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