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엄마는 반여자 아니야. 엄마는 나랑 똑같이 여자란 말이야!” 아이는 엄청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듯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남편과의 대화 속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듣고 있던 나는 물론 화자인 남편을 당황스럽게 만든, 오해를 일으킨 단어는 ‘반려자’였다. ‘아빠에게 엄마는 평생의 반려자야~’ 뭐 이런 비슷한 표현이었겠지. 평소 티 나는 애정 표현이라곤 없는 남편이라 괜한 말로 애정 한번 과시하려다 봉변 당한 상황이 고소하기만 하다. 놀란 눈으로 엄마 아빠를 번갈아 보는 아이의 표정과 예상치 못한 단어 연상이ㅡ반려자 반여자,,,, 재미있어 한참을 웃었다. 여전히 나는 남편의 반려자이며 여자로 만 40.8살 좌표 위를 지나가고 있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하는 건 아이의 어릴 적 실수로 생긴 표현이지만 나의 ‘반(半)여자’의 시간이 조금씩 그려지기 때문이다.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대상자였던 작년, 자궁경부암 검진은 하지 않아 결국 올해까지로 유예 신청을 해놓았다. 빠지기 직전 흔들리는 치아를 혀끝으로 건드리기만 할 뿐 용기가 없어 불쾌한 피 맛을 참아내는 것처럼 산부인과 진료는 미루고 싶은 일이다. 한 번의 임신과 출산의 유경험자로 산부인과 진료의자는 수십 번 앉았지만 여전히 생각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쩌면 여자에게 가장 친숙해야 할 진료과인 (산)부인과가 치과보다 싫은 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토요일 오전 음악마저 흘러나오는 인테리어에 신경 쓴 예쁜 공간에 긴장한 채 발을 들인다. 검진 시간은 1-2분 정도로 짧은데 진료의자에 앉기까진 이렇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니. 25일마다 찾아 오는 귀찮음에 ‘이제 그만 폐경을 바란다’ 쉽게 내뱉으려던 말을 얼른 삼킨다. 폐경과 함께 찾아올 갱년기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으면서! 매일 아침 공복에 삼키는 (질 건강을 위한) 여성유산균 한 알, 점심 직후에는 회사 책상 위 상비되어 있는 여성종합비타민을 잊지 않고 챙겨 먹는다. ‘포 우먼’이라 적힌 나의 영양제들을 떠올리며 폐경 운운한 경솔한 스스로를 꾸짖는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줄어들고 있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내 몸속 곳곳 여자로서의 굵고 짙었던 인상과 윤곽들이 흐려지는 듯한 상상에 기분이 상하고 만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20년 전 광고 카피를 화면에 클로즈업된 배우의 아름다운 얼굴, 우아한 목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기억한다. 광고 제품이 최신 가전ㅡ냉장고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은 시대착오적 표현으로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광고를 접한 당시 시청자들 대부분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만큼 카피는 매력적이었다. 나 역시 여자라서 딸이고, 아내이고, 엄마일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산다. 반 여자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에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난 분명 지금 여자라서 행복하기 때문이다. 만 40세 이미 중년이 되어 국가(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명명해 준 ‘생애전환기’에 들어섰지만 여자로서는 어떤 전환도 작은 변화도 맞이할 의사가 없다.
꽃봉오리 상태일 땐 단단하게 뭉쳐있다 얇은 꽃잎이 한 장씩 열리기 시작하면 겹겹이 풍성해지는 여름 꽃 작약이 좋아 자주 집에 들인다. 눈에 띄는 작약의 화려함과는 외모도 체형도 거리가 멀지만 나의 삶 모든 layer에는 여자로 스스로 행복한 모습이 켜켜이 배여 있다. 여성호르몬 수치상으로는 ‘반(半)여자’에 가까워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걱정과 불안함은 거부한다. 몸짓이 가볍고 몸선이 흐트러짐 없이 유연한 모습이고 싶은 욕구만 가득하다. 일요일 아침 7시, 공복에 여성유산균 한 알을 최소한의 물 한 모금과 함께 넘기고 평소와는 다른 몸에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달리러 나간다. 에스트로겐 분비가 0에 가까워질 때 유일하게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건 꾸준한 유산소 운동-달리기뿐이라 소중하다. 통계상 기대수명이 83.5세인 지금, 앞으로 또 반 남은 여자로서의 삶을 위하여 나를 똑바로 일으켜 세운다.
June 11,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