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누구게~ 하린일까 엄마일까?’ 사진 여러 장과 함께 할아버지의 메시지를 받은 아이는 퀴즈라도 하는 듯 반색한다. 분명 본인은 아닌, 나이가 얼추 비슷해 보이는 사진 속 아이를 보며 “엄마야? 화장이랑 옷은 뭐야? 나처럼(뭐든 내가 삼십 년은 먼저란다) 발레 공연한 거야?” 대답을 들을 마음은 있는 건지 질문을 쏟아낸다. 필름 카메라로 찍고 인화했을, 아빠가 전송한 사진들 오른쪽 아래에 힌트처럼 날짜가 보인다. 촌스러울 만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 동선 안에서 동작을 취하는 5학년의 내가 있다. 이목구비 특징을 가려버린 진한 화장과 똑같은 의상 때문에 사진 구도 상 정 중앙에 있는 아이가 나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교내 특별활동으로 무용반이 생기고 새로 오신 무용 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얌전한 목례 뒤 외모 탐색과 복화술을 활용한 우리만의 평가로 호들갑이었다. 곧 무용반이 되어 내 인생 손꼽히는 무서운 선생님으로 기억될 거란 걸 알지도 못하고.
체육 교과에 속한 무용 수업, 5분 이내의 창작무용이 조별 과제로 주어졌다. 발표 날까지 몇 주간 매일 같이 모여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안무를 짜내고 수정하길 반복하며 열심히였다. 성적에 반영되었기에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을 장착한 난 그때도 열정을 쏟았으리라. 도입부 강렬한 음악으로 시작하여 두 손에 쥔 탱탱볼을 활용한 우리 조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무용선생님께 ‘손끝 표현이랑 팔 놀림이 예쁘네.’라는 평가를 들은 그날이 무용부 자격을 얻은 디데이였을지도. 남은 5~6학년은 한국 무용을 배우고(혼나고) 공연과 대회에 나가며 국민학생 생활기록부 경력란 대부분을 채웠다. 가볍게 손을 들어 시작하는 처음은 흥미와 관심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내 길로 선택하고 집중할 때는 지식과 열의가 있어야 추진력을 받는다. 한국무용이란 것에 나는 열망이 부족했고, 부모님은 정보가 부족했다. 그 결과로 책장에 ‘세실리아-D’ 라벨 붙은 한 권의 앨범에 담긴 무용 공연 사진들만 남긴 채, 짧았던 경력은 영원히 단절되었다.
말이 비면 방송 사고인 라디오 부스인 듯 쉼 없이 말하고 노래하는 아이를 보며 “뮤지컬 배우를 하자!”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한여름 8월, ‘어린이 공연예술장착소’를 내건 뮤지컬 25주 차 수업 대장정에 스타트를 끊었다. 주 1회지만 매주 토요일 버스와 지하철 4호선-7호선을 환승하며 폭염과 장마, 한파를 모두 겪는 동안 고단하고 귀찮기도 한 날이 없지 않다. 그때마다 ‘엄마, 오늘 미술시간에 우리가 만든 아테나 신전 기둥으로 무대 만들 거야.’ ‘배역 정하는 날인데 꼭 아프로디테 했으면 좋겠어. 노래도 제일 마음에 들고 미의 여신이잖아.’ 아이의 기대감 넘치는 말에 중도 하차란 없단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며 2시간 수업보다 왕복 소요시간이 긴 서울 나들이를 모녀는 6개월간 다녔다.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되었던 뮤지컬 공연이 4개월 만에 무대에 오른 날, 떨어지는 핀 조명 아래 나만의 아프로디테가 서 있다. 노래와 대사를 읊으며 꼭 감은 눈, 힘 있게 내뻗은 손끝마저 연기인 듯 바라보는 난 최고 몰입한 관객이었다. “손끝 표현이랑 팔 놀림이 예쁘네.” 30년 전 무용선생님의 차가운 칭찬의 말을 떠올린다. 아이의 뮤지컬 공연, 발레 정기공연을 담은 수백 장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행복한 건, 무대에 선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였다. 어릴 적 가슴 저 아래 가만가만 가라앉힌 나도 몰랐던 아쉬움과 서운함이 있다. 아이는 그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도(度) 높은 엄마의 마음이 핀 조명을 받은 듯 확연히 드러난다.
멈출 거 같지 않은 떨림과 두려움을 이겨낸 후에는 온전히 내 것이 된 흥분과 기쁨이 있다. 아이와 함께느끼길 바란 건 나의 욕심이다. 발레 무대 위 <꽃의 왈츠> <사랑의 요정>을 추는 아이는 속눈썹을 붙이고 볼터치를 얹어 예뻐진 얼굴에 가장 신이 났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명에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싶어 무대를 그리워할 뿐이다. 그리고 난 올해 첫 휴가(오후 반차)를 내고 금요일 저녁, 대한민국 발레축제를 맞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하러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간다. 누구보다 발레(무대)를 사랑하는, 체형은 이미 전공자이지만 재능이 부족하여 정기공연을 끝으로 4년차 발레 경력을 접은 슬픈 너와 함께.
June 25,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