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지 삼십 분이 넘었는데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여기 언제 나와요?’
“아, 피자 시키셨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곧 나오실 거에요.”
피자가 나오시다니, 여자가 외출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 좀 기다려 줘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피자가 성장하느라 꽤 시간이 걸리나 보다.
주문한 차가 준비되었다고 알려주는 ‘진동 벨’이 없는 찻집에서는 종업원이 커피 나오셨습니다, 나 유자차 나오셨습니다, 라고 한다. 받으러 갔을 때 주문한 커피가 두 개 이상이면 표시해 놓은 컵을 가리키며 이쪽이 라떼십니다, 한다. 냅킨이 보이지 않아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자 손바닥을 펴서 뻗으며 저기 뒤쪽에 있으세요, 한다. 차도, 휴지도 극진히 공대한다. 뿐이랴? ‘화장실은 왼쪽이세요’ 라고도 한다.
우리말은 존댓말이 발달해 외국인이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사물에까지 존댓말을 쓸까? ‘동방예의지국’이라서일까? 각계에서 지적하자 음식점에서도 문제를 인식했는지 한동안 ‘저희 매장에서는 사물 존칭을 쓰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냐고 물으니 만 오천 원이세요, 한다. 카드로 계산하려니 ‘현금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현금으로 계산하면 조금 할인된단다. 자판기 앞에서는 동행인이 묻는다.
“동전 있으세요?”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금전 만능주의’가 팽배한 줄 알지만 돈에도 존댓말을 쓰다니. ‘돈 님’이라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돈에 인격을 부여하여 가격이 착하다고까지 하는 세상이니 그렇게 부를 날도 머지않았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강사는 어른 학생에게 잘 되시네요, 라고 잘 말한다. 잘 안 되시는 분들은, 이라고도 한다. 되다, 라고만 해도 되는데 시, 를 넣어야 예의를 갖췄다고 여기나 보다. 통신사에서는 약정이 해지되셨다고 하고 물리 치료사는 ‘팔이 위로 안 올라가세요?’라고 묻는다. ‘대출 가능하십니다’, ‘이 색상이 더 밝으세요’ 등 아무 데나 ‘시’ 자만 붙이면 듣는 사람을 높이는 걸까?
‘피자 나오셨습니다’는 사물에 존댓말을 써서도 틀렸지만 사람과 사물을 같이 높인 게 잘못이다. 그러면 사람과 피자가 같은 격이 되어 사람이 그만큼 낮아진다. ‘~습니다’는 가장 격식을 갖춘, 한국어 최상위의 존댓말이다. ‘피자 나왔습니다.’라는 말은 그 이상 더 높일 수 없고 높일 필요도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출산 휴가를 가셔서 대신 국어를 가르친 분이 있었다. 그분이 한 번씩 ‘우리말에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하며 칠판 쪽으로 돌아서면 한 시간 내내 문법을 설명하셨다. 우리말이 정말 어렵구나, 생각했지만 ‘성문 기본 영어’로 영어 기초를 다지듯 그 시간에 배운 것이 국어 문법의 초석이 되었다. 그때인지 다른 국어 시간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형용사에는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고 배웠다. 존댓말은 동사에 써야지 ‘힘 세시다’ 하면 틀린다고 할 때 우리는 웃었다. 그렇게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존댓말을 쓰던 친구가 우리 엄마가 작으셔서, 라고 해 너무 이상하게 여긴 기억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어서였다. 지금은 존댓말로 쓴 형용사가 넘치고 넘친다. 높으신 분, 좋으신 하나님, 고마우신 선생님, 착하신 분이야, 마음이 넓으셔......
예전에는 ‘있다’를 ‘계시다’라고 한 게 형용사 존댓말로 유일했다. 대부분 단독 주택에 살던 시절, 거의 언제나 열려있던 문 앞에서 종종 누군가가 ‘계십니까?’ 했던 일이 생각난다.
요즘 ‘있으시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써서 사전을 찾아보니 ‘있다’의 존댓말은 존재를 말할 때는 ‘계시다’, 상태를 나타낼 때는 ‘있으시다’ 를 쓴다고 되어있다.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송에서 ‘국물이 많으시면’ 이라 해서 몹시 거슬렸는데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그런 존댓말을 쓸 수 있다면 ‘국물이 많이 있으시면’ 도 맞는 말일까? 피자가 탔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화덕 피자는 밑이 좀 타실 수도 있어요, 했다. 이게 정말 바른 말인가?
사물 존칭에 진저리를 치던 하루, 난데없이 철학을 하게 되었다. 사물에 존댓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안다. 그런데 존댓말을 써야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가 사람인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행동, 팔, 어깨, 머리카락, 피부, 각질까지 그 사람의 일부라면 연장자의 몸에도 존댓말을 쓰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기시네요’, ‘눈이 예쁘시네요’ 하고.
그렇다면 곧 떨어져 나가 그 사람과 관계없는 사물이 될지언정 현재는 그의 것이니 즉 그 사람이니, 병원에서 ‘피가 막히셨어요’, ‘가래가 많이 나오셨어요’ 하고 수술 후 ‘방귀 나오셨어요?’ 하고 묻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다들 그걸 알아서 키가 크시다, 마르셨다, 고우시다, 잘 생기셨다, 하는 건가? 아무개님은 머리가 잘 돌아가신다, 고 하는 사람, 매니큐어가 세련되세요, 하는 사람도 보았다. 자기보다 윗사람이면 그의 머리나 목,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 무좀 걸린 발가락, 보이지 않는 창자와 코딱지까지 다 높여야 할까?
내가 굳이 철학 할 필요가 없었다. 알고 보니 ‘국립국어원’에서 높여야 할 대상의 신체, 성품, 심리, 행위, 소지품과 같이 상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과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을 높일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소지품까지? 매일 커피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나 지팡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못 걷는 사람에게는 커피나 지팡이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이니 거기에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뜻인가?
이 추운 날에 몸을 누일 집은 생활의 필수 조건인 사물인데도 가령 집이 좁으시다, 하면 틀린 말인데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휠체어는 아주 밀접하니 존대하라는 건가? 규정이라기엔 너무도 구멍이 많은 규정이다.
애매해서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오락가락한다. 선생님 모자가 멋있으십니다, 는 모자가 아니라 선생님을 높이는 간접존대라서 맞고 모자가 멋있으십니다, 는 틀린다는 답변이 있는가 하면 과장님 넥타이가 예쁘시네요, 하면 사물 존칭을 써서 틀린 것이니 넥타이가 예쁘네요, 로 바꿔야 한다는 답변도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랴? 간접 높임이나 사물 존칭이라는 용어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도 했다. 그럼 차라리 한 줄로 '사물에는 존칭을 쓰지 않는다'하는 게 간단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람에게 써도 이상한 존댓말이 있다. 제삼자가 다른 장소로 갔다는 뜻으로 하는 ‘돌아가셨다’가 그것이다. 그 말만은 좀 신중하게 쓰는가 싶더니 요새는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하는 말도 꽤 자주 듣는다. 아무개님은 먼저 돌아가셨어요, 하는 말에 초기에는 ‘죽었단 말이요?’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두 번 듣는 게 아니어서 흘려듣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 아버지를 두고 썼다면 화를 냈을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배운 홍랑의 시조에는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자시는’이라 했다고 선생님이 무식하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쓰는 사람을 보았다. 여러 부부가 1박 2일 예정으로 어딘가를 가게 되었을 때 여자 총무가 일정을 안내하며 ‘저녁 식사 후에는 각자 방에서 자시면 됩니다’라 하는 게 아닌가. 잘 아는 부인들에게 ‘주무시다’는 너무 극존칭 같고 ‘자면’은 좀 낮춤말 같아 적당히 중간을 선택했는지 모르나 정말 이상했다. 무식해서가 아니라면 아무 말에나 시, 자만 붙이면 높이는 거라고 잘못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를 많이 쓰지만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로 충분하다. 모든 말에 시, 시, 하고, 드리고 드리다 앞으로 조문하며 ‘애도 드립니다’까지 할까 걱정된다.
사물에는 존댓말을 쓰면서 아랫사람에게는 막말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나이 고하를 많이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연하의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모임에서든 가장 나이 적은 사람이 수저도 놓고 물도 따라 돌리고 뭔가 알아보고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사람도 다른 데서는 수장이고 집안에서는 제일 윗사람일 수 있는데 왜 졸병처럼 대하고 나이 많은 것만으로 대접받으려 하는가? 나이 많은 게 죄가 아니듯 벼슬도 아닌데.
학생에게 존댓말 쓰는 교사도 있고 학생들더러 자신에게 반말하라는 교수도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상대를 존중해서일 것이다. 사물은 존대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더 존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