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낭만을 쫓아 살아왔다. 시와 소설 속 아름다운 언어에 매료되어 국어교사가 되었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그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삶의 기쁨이었다. 문학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때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전세입자의 서러움이 내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말이다. 교통사고처럼 만난 질문 앞에서 현실을 직면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살고 싶은 삶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 고통을 늦기 전에 만난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전세집은 본가에서 독립해 얻은 지방의 낡은 주공 아파트였다. 이 집에서의 2년은 특별했다.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과의 좋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 보금자리였다. 전세 만기일을 넉 달 앞두고, 집주인에게서 나가달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전화를 마치고 집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웠고,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법적 개념도 모르던 나는, 이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세가가 두 배 이상 오르며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선배님, 저 좀 도와주세요.
그런 상황에서 직장 선배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평소에도 나에게 일에 쏟는 에너지의 20%만 경제 공부를 해보라며 입문하기 좋은 책 목록을 추천하던 선배였다. 처음에는 그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서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한 현실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선배뿐이었다. 다행히 선배의 조언으로 집주인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무지함을 직면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문제 해결의 안도감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었다. 스스로의 약함 앞에서 아이처럼 끅끅 울었다. 이대로라면 계속 도움을 요청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 아닌가. 끔찍하다.
어릴 적부터 경제적 결핍은 중요한 순간에 늘 장애물이었다. 성인이 되어 경제 활동으로 해결될 줄 알았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사실이 분했다. 그즈음 담임으로 맡고 있던 한 아이의 일이 나를 또한번 각성시켰다. 학생의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으며, 아버지는 고령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힘들어졌다. 몇 해 전 아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겨준 시골의 작은 산으로 국가 지원도 어려웠다. 그 친구를 위해 여러 서류를 증명하여 모 기업으로부터 어렵게 장학금을 받아냈지만, 졸업 후의 삶이 걱정이 되었다. 내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어른이 어떻게 그들에게 필요한 지혜를 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현실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학교에서 꼭 필요한 공부가 금융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장학금이 지금 당장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일회성 물고기라면, 금융 지식은 스스로의 상황과 성향에 맞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이거야말로 주체적으로 삶을 지킬 수 있는 지혜가 아닌가!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섣불리 교육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적어도 잃지 않는 금융 지식'을 나의 목표로 삼고 금융 교육 파일럿 테스트를 내 자신에게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정말로 보통의 사람도 스스로 배울 수 있는지, 실제로 유용한지, 재밌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실험하는 작업을 갖기로 했다. 해봐야 알 수 있고, 강해져야 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봐야 알 수 있고,
강해져야 선해질 수 있다
내가 최근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보았다. 극중 키팅 선생님은 ‘시의 이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불러 이 사회가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법한 비밀 하나를 알려준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삶의 목적인 '시, 미, 낭만, 사랑'에 꽂혔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삶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삶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무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삶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무시하지 않을 것.
4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전세살이의 서러움에 머물러 있지 않다. 비밀스러운 부자의 비법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안에서 방법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부동산 문을 망설이지 않고 여는 사람이 되었고, 매수자와 매도자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 상황과 시장 상황에 맞게 대출과 세금 지식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여정은 시작에 불과하다. 눈을 감고 아무 걱정 없이 시와 음악을 듣기 위해 여전히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길다면 길고 적다면 적은 시간 동안 어떻게 부동산 공부를 지속하며 성장하고 있는지 기록해보려고 한다. 돈돈돈 거리는 것이 천박하다고 여기던 문과인이 금융 무지로부터 발버둥쳐온 이야기다. 미래의 나를 위해 초심을 붙잡아둔다.
글. 세실
*계약갱신청구권
: 갱신이란 법률관계의 존속 기간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다. 따라서 계약갱신청구권이란 임차인(집을 빌려 쓰는 세입자)이 계약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계약을 1회 갱신할 수 있고, 거주기간이 2년 더 생긴다. 이때 임대인(집주인)은 임대료의 최대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출처:주택임대차보호법 제 6조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