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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d Mar 04. 2024

아빠가 돌아가셨다.

왜 벌써 이별해야 해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으니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라고 해도 너무 이른 이별은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윤석열 나이로 나는 30살, 우리 아빠 60살


이제 그 힘든 고생의 시기가 끝나 인생을 즐길 일만 남은 우리 아빠인데

왜 하늘은 이렇게 무심한 것인지 그렇게 고생한 사람을 행복한 일만 남은 시기에 꼭 데려가야만 했을까


죽음을 무서워했던 나였어도 감히 부모님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상상하면 현실로 이어질까 봐 그리고 내심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불효라고 생각했다.


차마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현실에 생겼지만 온전히 슬픔을 느끼고 흘려보내기 전에 나는 아빠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겨있는 엄마를 위로해야 하기에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아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아빠가 더 고통스럽지 않게, 편히 쉬기 위해, 엄마 더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급하게 갔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사실 '왜 지금? 왜 벌써? 대체 왜 우리 아빠가?'라는 하늘에 대한 원망이 한가득이고 가족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되어 눈물부터 나온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 흘릴 수 없는 눈물이기에

나는 주변사람들 말대로 엄마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쉽게 눈물을 흘릴 수도 나약한 마음을 내비칠 수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 혼자 주저리주저리 글로 풀어내는 것뿐.


사실 가족들이며 엄마 친구분들이며 계속 전화와 엄마를 챙기라는 말이 나를 너무 짜증 나게 한다.


아빠를 잃은 나에게 그만 책임감을 던져주라고,

충분히 가족인 내가 알아서 잘 챙길 거니 제발 연락들 좀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다.

슬픔에 빠져 살기엔 헤쳐가야 할 퀘스트들이 많아 또다시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슬픔에 빠질 때마다 아빠에 대한 원망을 떠올릴 것이다.


아빠가 좋아하던 큰 딸 시집가는 것만 보고 갔냐고. 왜 나는 웨딩드레스 입은 거 봐주지도, 내 결혼식장에 같이 입장도 안 해주고 그렇게 급하게 갔냐고. 혼주석 그렇게 비워놓을 거냐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도 언니만 보고 그렇게 갔냐고. 내가 저녁에 갈 때까지 기다려주지 왜 그렇게 급하게 갔냐고 나중에 만나면 엄청 따질 거다.

따질게 백가지는 되는 듯. 기다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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