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의 기록
엊그제 B마트에서 때 이른 수박을 발견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수박을 먹기 위해 여름을 기다린다 해도 무방할 만큼 나는 수박을 좋아한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식감은 더위를 날리기에 더할 나위 없고, 무엇보다 수박이 주는 든든한 포만감은 내 삶을 충만하게 해 준다.
세상에 단 하나의 음식만 남겨야 한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박을 선택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의 수박 사랑은 유명했다.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집에 수박을 보낼 정도였다.
그렇기에 어제 배송된 수박의 존재는 집으로 가는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충분했다.
아직 때 이른 수박이라 그런지 매우 작고 아담한 놈이 왔다.
나는 대략 7개월 만에 만난 초록 줄무늬가 반가워 거침없이 칼질을 시작했다.
나의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가 '수박 깍둑썰기'인데, 깍둑썰기하는 도중에 한 두 입 먹는 수박이 또 별미이다.
앞으로 펼쳐질 찬란한 수박 맛의 예고편이랄까?
나는 여느 때처럼 수박을 다 자르기 도전에 입으로 몇 조각을 얼른 넣어보았다.
"..."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었다.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이 작고 아담한 놈에 '당도선별 꿀맛'이라고 스티커가 붙어있었지만 그런 문구가 날 기만한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결정적으로 아직 수박 맛이 올라올 때가 아니다. 누가 봐도 지금은 철쭉의 계절이니까.
아무리 하우스 재배가 흔해졌다 해도 여전히 계절을 가장 많이 타는 과일은 수박인 것 같다.
체감상 내가 너무 기다려서 유독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수박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주는 과일이다.
뜨거운 여름이 되고 나서야 풍성한 단맛을 품는 수박처럼 무엇이든 제철이 있는 것 같다.
사계절이 제철이면야 좋겠다만, 그렇다면 그 제철의 묘미와 소중함을 모를 것 같다.
제철로 가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의 나처럼 성급하게 때 이른 수박을 열어버리면, 실망해버리거나 탈이 날 수도 있다.
최상급의 정점의 맛을 보려면 인내로 기다리고,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제철 음식을 즐기는 것은 인내와 순발력이 모두 필요한 고차원적인 행위이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제철은 또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지나간 계절을 아쉬워하지 말고 다음 계절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달고 맛있는 수박을 즐기기 위해 여전히 2달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기다리고서야 맛볼 수 있는 그 정점의 맛을, 당장의 마시멜로우를 참는 아이처럼 주먹을 꼭 쥐고 인내해 본다.
숨만 쉬어도 흐르는 '시간을 아군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