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한 단상

by 시더루츠

금단 5주 차에 들어서기 하루 전날이었다. 평안했던 하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일과 관련된 사소한 이슈 하나가 생겼다. 평소라면 충분히 넘길 수 있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조금만 신경이 쓰여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 작은 분노는 그동안 나름대로 유지해 오던 금단 상태에 불을 붙였다. 사실 나는 ‘참는다’는 개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참는다는 것은 또 다른 억누름이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중독을 줄이려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일상 속 기쁨을 회복하고 싶었고, 무너졌던 뇌의 보상 체계를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동안은 나름대로 욕구를 수용하고 관찰하며 잘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과거의 금단 증상은 끌려가는 욕망을 바라보며 받아들이며 달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이미 막아두었다는 사실을 내면이 알고 있었기에 그 에너지가 흘러갈 경로를 찾지 못하고 안에서 폭발하려는 느낌이었다. 압력은 점점 높아졌고, 불처럼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쳇 GPT는 차분한 신체 활동이나 산책을 권했다. 하지만 그 방법들로는 그날의 에너지가 충분히 흐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원래 중독되었던 행동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형태의 대체 자극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강한 허무감이 찾아왔지만, 그것마저 억누르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경험으로 인해 뇌가 다시 과거의 패턴으로 돌아간다면 서글픈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 역시 나에게 일어난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속에서 배우려 한다.


대체 중독이란 무엇일까.


나는 처음에 중독을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도파민네이션』에서 말하듯 우리는 SNS, 성적 자극, 담배, 도박 등 다양한 강한 자극에 매우 쉽게 노출된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욕망들을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숨기려 한다. 어쩌면 바로 그 금기성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중독은 단순히 쾌락을 원하는 행동이라기보다, 고통을 피하려는 행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중독이라는 현상이 몸과 마음은 준비가 안되었는데 머리만 강하게 작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에너지가 표현하는 것은 원래 몸의 감각과 감정의 흐름, 그리고 삶의 서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중독은 이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강한 자극으로 연결된다. 쉽게 말해 도파민은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 같은 안정과 연결된 물질들과 함께 작동할 때 여운을 남기지만, 도파민이 단독으로 작동할 때는 갈망만을 남긴다.


내가 경험했던 중독 또한 처음부터 강하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접했던 활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분노가 올라올 때 그 행동을 감정 배출의 통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한 자극을 주면서도 동시에 묘한 안심과 이완을 제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습관이 되었고, 하지 않으면 감정이 처리되지 않는 하나의 주요 통로가 되어버렸다.


나는 깨닫는다. 단순히 중독을 끊는 것은 해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중독을 억지로 제거하면 에너지는 방향을 잃고 또 다른 방식으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보상 회로의 차단 반응’이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특정 자극을 통해 감정을 배출해 온 뇌는 그 통로가 사라질 때 강한 압력을 느낀다. 그것은 쾌락의 결핍이라기보다, 익숙했던 감정 조절 방식이 사라진 데서 오는 혼란이다.


도파민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물질이 아니라, ‘원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과 함께 작동할 때 우리는 안정과 여운을 느끼지만, 도파민만 단독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끊임없는 갈망 속에 머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내가 끊고 싶은 중독을 어떻게 건강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삶 속에서 흘려보낼 수 있을지를. 단순히 중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욕구와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강한 자극과 강한 이완 사이에서, 일상은 쉽게 사라진다. 어쩌면 내가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은 자극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힘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금단 3~4주 차 : 나를 위로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