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 3~4주 차 : 나를 위로하는 힘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닌

by 시더루츠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나는 더 이상 무언가에 중독된 채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게,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나의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도 있었다.


그렇게 중독되던 것들을 멈추기 시작했고, 어느덧 4주 차에 들어섰다. 이 시점이 되자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존의 쾌락 라인이 끊기고 보상 체계가 떨어지자, 뇌는 가장 강렬했던 쾌락의 기억과 이미지를 꺼내 와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으로 붙잡아 보려는 것처럼,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떨쳐내려다가도, ‘떨쳐내면 안 되지’ 하며 알아주고, 한 발짝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더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어떤 일이나 활동에 몰입하고 있지 않은 순간이 오면,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들이 무방비 상태로 자동 재생됐다. 실시간으로 틀어주는 영상처럼.


한편 책에서는 중독을 줄이려면 일단 멈추고 연상되는 모든것을 강제적으로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강제로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늘 그렇게 참아왔다. 하지만 참는 것은 또 다른 곳에서 억눌린 것들을 표출했었다. 이번에는 나는 왠지 모르게 나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누르거나 몰아붙이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알아주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이걸 시작했는지,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글은 내가 나와 대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나는 글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고. 절제하거나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대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지만 자극을 쫓는 뇌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정말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나로 살고 싶다’고. 나는 몸과 마음과 머리, 그 어느 것과도 부딪히거나 싸우고 싶지 않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일부이고, 나이며, 앞으로도 함께 가야 할 소중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해졌고, 눈물이 살짝 고였다. 아직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어렴풋하게 무언가를 이해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자극을 쫓는 힘을 없애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본능이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에너지가 흘러갈 통로를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 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일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같이 가고 싶지만, 그럼에도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하고, 방향은 내가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런 마음을 머리가 알아준 것인지, 글을 쓰고 난 뒤 쾌락에 대한 갈증은 다소 누그러졌다.
마음속이 조금 따뜻해졌다. 감사하다.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이 조그만 힘이 쌓여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새로운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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