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느끼지 못했다기보다, 느끼지 않으려 했다.
감정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해야 하는 것이었고,
끝까지 외면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이상 누를 수 없을 때 그것들은 터져 나왔다.
알 수 없는 분노, 그리고 폭발 뒤에 찾아오는 공허와 죄책감.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흔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감정을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필터는 존재했다.
선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감정은 받아들이고,
악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감정은 눌렀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그 사람은 상처를 주려던 게 아닐 거야.”
나는 이성적으로 해석하려 애썼다.
그러나 해석과는 별개로, 상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머리를 내려놓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로 했다.
칭얼거림도, 투정도, 질투도 정당한 감정이라 여겼다.
그것은 내 안의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아이를 인정하고 받아주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다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질투, 동경, 허탈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는 저렇게 못 할지도 모른다.”
“왜 나는 저 자리에 없을까.”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고,
어느 것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과
감정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내 안의 감정들과 회의를 연다.
그들의 말을 듣되,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나는 심판이 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최종 결정권 자다.
모든 감정을 인정하되,
모든 감정에 같은 힘을 주지는 않는다.
아마 성숙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서
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일.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바라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