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여행기
이렇게 설렘 없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동안 태국을 자주 다녔다. 처음 갔던 태국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사원, 향신료 냄새가 감돌던 음식들, 그리고 한국의 무겁고 경직된 공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느슨한 분위기 속에 서 있던 나.
태국에 갈 때마다 나는 기대했다. 이미 여러 번 갔음에도 늘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여행은 익숙한 루틴이 되어 있었다. 늘 가던 사원, 늘 먹던 음식, 늘 걷던 길. 편안했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필리핀 세부. 처음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정보를 찾아볼수록 마음이 식어갔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말, 음식에 대한 낮은 기대, 낯선 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예약했다. 왠지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만의 공간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안정은 동시에 나를 붙잡고 있었다. 비행기 타기 다섯 시간 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취소할까. 조금 더 미룰까. 지금 꼭 가야 할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불안이었다.
나는 새로운 곳이 두려웠던 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나의 상태가 두려웠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 무언가를 배우는 일,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일. 한국에 있으면 유독 예민해진다. 뭘 해도 평가받는 느낌이 들고,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이 앞선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나를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인지, 휴식인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동생이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늘 혼자 여행을 잘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 공항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평소와 같은 밥인데도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짐의 순간 감정이 순간 움찔했다. 분명 돌아올 것이고, 또 만나게 될 동생일 텐데 마치 다시 못 볼 사람처럼 처량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나는 출국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