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겼던 것은 인터넷뿐이었다

by 시더루츠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숙소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파 다시 누워야 했다.

운동 일정도 거의 다 취소했다. 이 몸으로 세부에서 계획했던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다음 날이 체크아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냥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정을 정리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숙소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고, 잠시 쉬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카지노에 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딴 건 운이었는지, 그 이후로는 계속 잃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경험했으니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쇼핑몰에 들러 가족들을 위한 기념품을 샀다. 엄마 것, 동생 것, 내 것. 괜히 하루가 잘 마무리된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 위치가 움직이지 않았다. 5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나는 쇼핑몰 입구까지 걸어 나가 기다렸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어 화가 나 취소를 눌렀다. 그런데 에러가 떴다. 아뿔싸 혹시나 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으나 보내지지 않았다. 인터넷이 또 끊긴 것이었다.

세부에서 종종 겪었던 일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멈춰버리면 화가 크게 올라왔다. 이제야 알았다. 기사가 움직이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끊겨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 앉아 기다렸다. 약속 시간은 거의 다 되었고, 이미 늦을 게 분명했다. 10분쯤 지나자 메시지가 몰려왔다. 기사에게 부재중 전화가 세 통 와 있었다. 이미 도착해 10분을 기다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도 나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화가 날 상황이었을 텐데, 그는 태연하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계속 “쏘리”를 말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이 자주 끊긴다고 했다. 도착 후, 팁을 건네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었다. 그 작은 장면이 이상하게 기분 좋게 남았다.


친구와는 중국식 완탕 국수를 먹었다. 고기도 맛있었고, 밥에 말아먹으니 든든했다. 이후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갔는데, 주인이 한국 사람이었다. 눈치가 어찌나 빠르던지, 필요한 걸 말하기 전에 먼저 다가왔다. 가게 분위기도 좋았다. 아직 홍보가 덜 되었다고 했고, 친구는 추천하겠다고 말했다.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다.

이제 내일이면 세부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하려던 것들을 다 하진 못했다.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배운 건 많았다.


중간중간 끊기는 인터넷,
울퉁불퉁한 인도,
밤길의 치안에 대한 긴장,
그림 없는 메뉴판,
휴지가 없는 식당,
와이파이를 확인해야 하는 카페,
콘센트가 없어 노트북을 미리 충전해야 하는 일,
신호등이 적은 교차로의 혼잡함.


사소해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1950년대 이후 한때 필리핀보다 못살았던 한국. 70년대 이후 역전되었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폐허 위에서 도로를 깔고, 산업을 일으키고,

묵묵히 버텨온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시간 위에 서 있다.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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