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간단히 조식을 먹고 성당에 다녀왔다. 성당은 화려했고 사람도 많았다. 다만 모든 통로가 개방되어 있어 공기가 머물지 않았다. 덥고 습한 바람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미사를 마친 뒤 어제 잃어버린 선글라스를 다시 사고 싶어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본 마켓으로 향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쓰러져 가는 판자 가게들이 듬성듬성 모여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발걸음이 멈췄다. 이상하게도 그곳의 열기와 분위기가 나를 밀어냈다. 오래 머물 수 없을 것 같아 바로 나왔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쇼핑몰로 향했다. 역시 나는 이런 공간이 더 편하다. 시원하고, 정돈되어 있고, 공기가 통제되는 곳. 쇼핑도 잘했고, 카페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필리핀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학생이었는데 마침 시간이 맞았다. 일주일 동안 거의 혼자 여행하듯 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맛있는 피자를 먹으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별 의미 없는 스몰 토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아마도 그만큼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뒤, 혼자 남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다. 관계를 서두르면 금방 피로해진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만나면 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괜찮아진다. 에너지가 잠깐 살아난다. 하지만 헤어지고 돌아오면, 다시 깊이 지친다. 과거에도 그랬다. 연애 초반, 나는 세 시간 이상 함께 있기 어려웠다. 지쳐서 혼자 있고 싶었다. 같이 자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반드시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 자야 했다. 이런 내가 정상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걸까. 세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보니, 혼자 여행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가족이거나 커플이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았다. 나는 관계 때문에 금세 피로해지고, 그러면서 또 외로워진다.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여겨졌다. 기존의 사회 통념이나 방식 인간관계의 모든 것들을 때려 부수고 내 방식으로 가야 함을 느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