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한 달 살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by 시더루츠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조식을 먹고 성당에 다녀왔다. 우연히 미사가 끝나기 직전이어서 잠깐 참여할 수 있었다. 기도를 드리고 성당 안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도 몇 가지 사고 나왔다.

원래는 한 달 살기를 계획했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꽤 컸다. 어제 만났던 친구는 이곳이 관광 도시라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심심하고 할 것이 없는 동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섬 근처에 머물거나 리조트에서 레저 활동을 즐긴다고 했다. 과거 태국이나 대만을 처음 여행했을 때도 나름대로 고생은 했지만 적응하며 버텨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부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장기 체류 시 무엇이 중요한지 정리해 볼 수 있었다.


1. 생활비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생활환경이 열악한 편인데, 물가는 생각보다 싸지 않았다. 물론 현지인처럼 생활하면 체감 비용은 낮아질 수 있겠지만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현지식을 마음 놓고 먹기에는 위생적인 부분이 걱정되어 시도하지 않았다. 숙소 역시 저렴하지 않았고 호텔 수 자체도 많지 않았다. 치안 문제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만 머물다 보니 식당 가격도 대체로 비쌌고, 사람도 많아 피로감을 느끼기 쉬웠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들이 이곳에서는 추가 비용이 붙는 경우도 많았다.


2. 숙소

장기 체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잠을 잘 자는 것이다. 동남아에서는 치안, 소음, 벌레, 위생 문제 등이 늘 걱정되는 부분이다. 다행히 벌레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음식점이나 숙소에서 바퀴벌레를 본 경험이 많다는 리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도시 근처에서는 닭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도 상당했다. 처음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선택했다. 월 90만 원 정도였지만 협상 후 70만 원 정도로 머물렀다. 그러나 수면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결국 근처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옮겼다. 호텔 가격은 하루 5만 원 정도였지만 세금과 청소비를 포함하면 하루 약 6만 원 정도가 되었다.


3. 도시 인프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도시 인프라였다.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자주 끊겼고, 편의시설도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세븐일레븐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찾기 쉽지 않았고 가격표와 제품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서비스 문화 역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카페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응대 방식은 전반적으로 느리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거스름돈이 없다는 이유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유심칩을 구매했을 때 핀을 제공하지 않는 등의 경험은 꽤 당황스러웠다. 음식점에서도 메뉴 설명이나 사진이 부족해 주문 과정이 번거로운 경우가 많았다. 음식 맛 역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종류도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고기 위주의 메뉴가 많았고 간헐적으로 햄버거, 중식, 일식 식당이 보였다. 사람을 만나거나 커뮤니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중심 몰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빈민가처럼 보이는 지역들이 많았고 밤에는 돌아다니기 불안했다. 사람을 구하거나 교류하는 방식도 대부분 페이스북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플랫폼 자체가 복잡하고 신원 확인도 어려워 불안하게 느껴졌다.


4. 이동 편의성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곳에서는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날씨도 더웠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다니는 거리도 많아 위험하게 느껴졌다. 중심지와 번화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정비되지 않은 느낌이었고 냄새나 치안 문제도 걱정되었다. 결국 도심을 조금 걷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다.


5. 도시 에너지

필리핀은 가족이나 친구 중심의 문화가 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태국에서는 혼자 다녀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단체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음식점이나 서비스 환경에서도 외국인에게 특별히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전체적으로는 자기들끼리의 문화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회처럼 보였다.


처음에 나는 숙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좋지 않은 숙소를 선택했다. 이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수면 문제가 생기면서 예민해졌고 생활 인프라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스트레스로 쌓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의 컨디션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두통과 허리 통증, 탈수 증상이 나타났고 작은 불편함에도 견디기 어려워졌다. 몸이 아프니 음식이나 이동, 사람을 만나는 일, 여행 자체가 모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여행을 계획할 때는 몸과 신경계가 편안한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 같다. 그리고 무리한 계획보다는 조금씩 도전하는 방식이 나에게 더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세부 여행은 내가 기대했던 한 달 살기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

이전 06화끊겼던 것은 인터넷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