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던 그날, 나는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식은땀이 났고, 비행기를 미뤄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 자며 버텼고, 결국 무사히 돌아왔다. 한국은 3월 초였지만 여전히 꽤 추웠다.
고맙게도 동생이 차로 마중을 나와 주었고, 덕분에 편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탈수 증상은 더 심해졌다. 허리와 다리는 저리고 아팠고, 말을 조금만 해도 목이 쉬었다. 눕는 것도, 서 있는 것도,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을 오가며 수액도 맞으면서 그저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수영도 배우지 못했고, 영어 과외도 한 번 하고 끝났다. 그때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으면서, 이제 와서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다. 참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나는 가끔 타로를 본다. 자주 봐주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과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에는 유독 인간관계와 새로운 인연에 대한 부분에서 ‘집착’ 카드가 반복해서 나왔다. 이상했다. 의식적으로 붙잡고 있는 인연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도 없었고 말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작년의 일이었다. 나는 깊이 관여하던 모임에서, 리더와의 마찰로 나오게 되었다. 심리와 영성, 관계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모임이었다. 아마 타로에서는 이 모임에 대한 집착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작년은 참 힘든 해였다. 층간소음 문제로 아랫집과 부딪히며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십여 년을 혼자 살던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엄마는 자주 말을 걸었고, 대부분은 나에게는 쓸데없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예민해졌고, 어느 날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공황 증상까지 겪었다. 견디기 힘들어 해외로 도피하듯 떠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이어가던 인간관계였던 그 모임에서도 나오게 되었고, 가장 가까웠던 동생마저 멀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거의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 것 같은 기분. 사람들은 가족만큼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조차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정신으로 그 시간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을 파고드는 것, 글을 쓰는 것, 나와 대화하는 것뿐이었다. 고독했지만 안에서 만나는 ‘내 안의 존재들’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불안이었다. 그 모임 안에서 나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충돌과 성장을 겪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압박감도 컸다. 그런데 그곳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불안이 찾아왔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 이대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
그때마다 이제는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그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필리핀 여행은 그렇게 힘든 작년을 보내고, 올해 초 다시 독립한 뒤 한 달 정도 쉬다가 떠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쉬어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았고, 마음이 특별히 설레지도 않았는데 나는 낯선 나라를 선택했다.
왜였을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