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위에서 살아가는
나는 30살 이전, 독립하기 전까지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취업을 고민하고, 학교를 고민하고,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문제들로 시간을 보냈다. 그저 그렇게, 다들 사는 방식대로 살아왔다.
그러다 독립을 하면서 내 삶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규직을 싫어했다. 구속받고 책임지고 갇히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나는 언제든 관두고 싶었고, 자유롭게 드나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계약직과 파견직을 전전했고, 한 직장에서 1년 이상 버틴 적이 없었다. 일하다가 지루해지면 그만뒀고, 첫 해외여행에서는 3개월이나 자유롭게 다니다가 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돌아오기도 했다. 다시 일을 하고,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또 그만두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가 이제는 그것조차 귀찮아졌고, 그리고 나이 먹으면 이렇게도 못 살 거 같아서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비난했고, 주변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지 않고 붙들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한 달에 20만 원을 벌었다. 그래서 때려치우고 취업을 했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나왔다. 이제는 9 to 6의 직장인의 삶을 견딜 수가 없었다. 개인사업으로 꾸역꾸역 입에 풀칠만 하면서 버티다가 코로나 시기에 반짝 성과를 냈고, 그 이후로는 다시 내리막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는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 삶을 보면 자유롭다며 부러워한다.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버는 돈과 불안정함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비수기에는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짜는 없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더 바빠지고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혹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통째로 투자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1년에 두세 달씩 해외를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사업이 조금 잘되면 좋은것보다 해야 할일이 많아 버겁게 느껴지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도파민에 미친 사람 같았다. 30살 이후로는 무언가를 진득하게 붙들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작년에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도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필리핀으로 떠난 이유도 아마 그 연장선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오래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고, 연애를 할 때도 세 시간 정도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졌다. 잠도 깊이 자지 못했고, 작은 소음에도 쉽게 깼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클럽이나 술자리를 즐기지 못했다. 대신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조용한 재즈바를 찾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데서나 자고,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힘든 일도 금방 털어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조금은 둔감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문제는 꽤 명확해졌다.
나는 양극단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외줄을 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쪽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자극을 쫓는 나였고, 다른 한쪽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쉬고, 명상하며 쉬고 있으려는 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가장 고생하는 것은 아마도 몸이었을 것이다. 안정을 원하는 마음과 자극을 쫓는 뇌 사이에서 몸은 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몸이 강제로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더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있는 중이다. 알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