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추억
재수 시절, 형들과 다과 파티를 준비하던 날이었다. 나는 거들기보다는 그냥 과자만 집어 먹었고, 형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한 형이 웃으며 말했다.
“너 이렇게 행동하면 군대에서 고생한다.”
그 말은 농담 같았지만, 결국 현실이 되었다.
군대에서 보낸 2년 가까운 시간은 쉽지 않았다. 갈굼과 구박이 일상이었고, 나는 늘 굼뜨고 어리버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훈련소 때부터 동기들에게 구박받던 나는 부대에 와서도 금세 찍혔다. 60명이 넘는 큰 부대 안에서 거의 왕따처럼 지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사람, K 선임 덕분이었다. 그는 원래 문제아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들어오면서 “이제 본인은 사고를 쳐도 티가 안 난다”며 오히려 나를 좋아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고, 잘 챙겨주었다. 내가 주눅이 들어 있을 때면 가벼운 농담으로 웃음을 건네주었다. 그 덕분에 힘든 이등병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행정병으로 K 선임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면 현실은 다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어떤 선임은 “힘내라”라고 격려했지만, 더 많은 이들은 “자살하지 마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마 내 얼굴이 늘 그늘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고통과 외로움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군 생활에 적응했다.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올라가며 눈치도 생겼다. 하지만 선임들은 내게 농담처럼 말했다. “너 병장 되면 누구보다 무서운 악마가 될 거다.” 그러나 나는 병장이 되어도 후임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힘들었는데, 어떻게 똑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냐고.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 말에 선임들은 조용해졌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건, 많은 이들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약자에게 되돌린다는 사실이었다. 군대에서는 이를 ‘내리갈굼’이라 불렀고, 사회에서는 ‘강약약강’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악순환만큼은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전역 후 세월이 흘러, 기억들이 희미해졌지만, K 선임만큼은 여전히 마음속에 선명하다. 힘겹던 날들 속에서 내게 웃음을 건네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사람. 그가 아니었다면 나의 군생활은 훨씬 더 어두웠을 것이다.
지금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못 만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때의 인연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삶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 뜻밖의 인연을 통해 따뜻한 빛을 건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