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품어주기 시작했을 때
가족 일로 인해 친가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친척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10년도 더 지나 다시 뵌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잘 알아보지 못한 어른들도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그들의 모습과 지금의 나로 바라본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마치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환갑을 넘긴 분들이었지만, 작은 언행에 기쁘게 웃고, 환히 드러나는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사람은 결국 똑같다. 그들 또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아이처럼 행동하고 작은 일에도 서운해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내려놓는 은퇴 시점에, 그들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관심받고 싶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이들과 선생님, 책상 위의 거친 낙서조차도 나를 겁먹게 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움츠러들었던 걸까? 그때의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기보다, 착하고 바람직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다. 그러나 그 마음은 오히려 나를 가두었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벙어리가 되었다.
놀림과 따돌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희화화했다. 아이들이 나를 조롱할 때, 나도 그들처럼 나를 비웃어 버렸다. 그렇게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남에게 맞추는 법을 배웠고, 약자임을 드러내어 동정심을 사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것이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타인에게 맞추는 관계에 익숙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방치했다. 욕망과 욕구를 내려놓은 채 껍데기만 남은 삶을 살았다. 그러다 독립을 하고 나서야 억눌려 있던 부정적인 에너지가 밀려왔다.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나는 비로소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철학을 통해 날카로운 시선을 얻었고, 소설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심리학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다운 치유의 여정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요즘은 SNS에서 “스스로 사랑하라”는 말이 흔히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치유는 책이나 영상처럼 아름답지 않다. 생지옥과도 같다. 덮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고, 상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되살아났고, 때로는 욕이 절로 나왔다.
나 역시 과거를 잊고 싶었고, 없던 일로 덮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나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도 상처가 떠올라 예민해졌다. 분노하고, 우울해졌으며,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화가 치밀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한 것은 아닌지 작은 행동에도 날이 서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살 수 없다고 느꼈다. 용기를 내어 분노와 혐오를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니, 그것들은 사실 두려움을 감싸는 나의 보호막이었다.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갑옷 같았다.
이제는 그 갑옷을 벗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나는 조금씩 그 보호막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도록 외면했던 나 자신을 만나러 갔다.
그것이 내면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 만난 내면아이는 나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고, 울고 있었다. 그 아이 곁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직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방치하고 외면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의식적으로 자주 찾아가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는 그 시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면아이와 친해지면서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알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분노만 느꼈지만, 이제는 분노 이전의 여러 감정들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외감, 외로움, 공허함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런 감정들을 알아주지 않으면 결국 합쳐져서 분노로 폭발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과 학교에 대한 상처도 이제는 분노하지 않고, 담담히 바라보며 현재의 나에 집중할 힘이 생겼다.
내면아이는 나에게 속 깊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억울한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고, 표현하지 못했으며, 아이답게 놀아본 기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해주었다.
“앞으로는 나를 잘 챙길 거야. 스스로를 사랑할 거야. 네가 겪은 고통과 아픔을 승화시켜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그 경험으로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그러자 내 마음이 감응했고, 힘이 생겼다. 내가 경험한 외로움, 우울, 고통은 결코 잊히거나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모아 내 것으로 만들고, 나를 이롭게 하며, 더 나아가 타인도 이롭게 할 것이다.
다행히도 내면아이는 내 진심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잘해보자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