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의 부재에 대하여

그는 생존을 위해 달렸고, 나는 존재를 위해 멈췄다.

by 시더루츠

태국 여행이 끝날 즈음, 나는 한 태국 친구를 만났다.
항상 자신을 바쁘다고 소개하던 그는, 우연히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전에 가보지 못했던 자연 속의 조용한 사찰과 폭포를 보고, 오랜만에 정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무언가를 강요했다.
“여기에서는 꼭 이걸 먹어야 해.”
“이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어야 해.”


나는 그저 감사 기도를 드리고, 눈앞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싶었지만, 그는 끝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 외에는 거의 쉬지 않았다. 운전하며 조금이라도 막히면 경적을 울리고, 사람과 부딪혀도 아무 말 없이 지나치며, 식사 중 단체 관광객이 들어오면 바로 “시끄럽다”라고 투덜댔다.


그의 불안과 초조함은 공기처럼 전염됐다.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카페에 앉았을 때,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그는 고객 클레임 문제로 전화를 붙잡았고, 나는 그 옆에서 차를 마셨다. 통화의 한숨 소리와 단호한 어조 사이에서, 내 여행의 고요가 조금씩 무너지는 걸 느꼈다.


결국 나는 그와의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말했다.

“나는 늘 바쁘다. 사장이니까, 다 내가 해야 돼.”
그의 말에는 자부심보다 의무감이 더 짙었다.
나는 조용히 답했다.
“나는 조금 덜 벌어도 여유롭게 살고 싶어.”


그의 삶은 생존의 연속이었고, 나의 삶은 의미를 찾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이해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의 바쁨은 그를 지탱하는 동시에, 그를 가두고 있었다.


삶은 일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의 체험이다. 일과 생존이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인간은 결국 삶을 ‘소비’하게 된다. 나는 그를 통해 다시 배운다


삶의 중심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형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를 통해 나 자신도 돌아본다. 혹시 나는 너무 여유롭게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을 만들고,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힘 역시,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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