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자끼리는 서로 염세하지 않는다.

연결에 대한 갈망

by 시더루츠

사전적 정의로 염세주의는 ‘세상과 인생을 부정적·비관적으로 보는 태도, 세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관점’이라 한다.


나는 한때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다.


학창 시절은 지워졌거나, 남아 있다 해도 고통뿐이었다. 어른들의 말 뒤에 드리운 그림자, 사회의 모순, 착한 사람은 고통받고 나쁜 사람이 이익을 취하는 현실. 교육·정치·문화·경제, 어느 것 하나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세상도, 그리고 나 자신마저 혐오했다.


그 무렵 만난 사람이 있었다. 바로 B 군이다.


겉으로 본 그는 유쾌하고 당당했다. 언변이 뛰어나 모두의 호감을 샀고,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블랙코미디처럼 가볍게 풀어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드러난 그는 뜻밖에도 성악설을 말하며 인간의 본성을 혐오했다. “사람은 악하게 태어났으니 억지로라도 선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가 즐겨하던 말이다. 오히려 그런 솔직함이 나는 더 좋았다. 내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 내뱉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착한 성정을 좋게 봐주었고, 나만큼은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고마운 형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속을 터놓다 보면 그의 그림자도 보였다. 학창 시절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온갖 불량한 짓을 했고, 영화보다 더 거친 현실을 경험했다고 했다. 내겐 낯선 판타지 같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 체험의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 어울리며 세상과 사람을 욕하는 재미로 살았다. 사람들의 추악한 면은 안주거리가 되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그러나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공허했다. 즐거움 뒤에 남는 건 견디기 힘든 상실감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염세주의는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낯설다. 목적 지향적이거나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그래도 버틸 수 있다.


B군이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아, 미안하다. 내가 병신이었네.”
“너를 과대평가했구나.”
“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세상과 인간을 애초에 ‘병신’으로 전제했고, 그럼에도 도덕이나 선을 기대한 자신을 탓하곤 했다.


결국 문제는 도덕적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붙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인간의 본성과 불의를 깊이 마주할 때 거대한 절망에 빠진다. 나에게는 학폭이 그랬고, B군에게는 수많은 양심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다.


돌이켜보면, 염세주의는 거창한 남 탓일지도 모른다. 상처가 적은 사람에겐 남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끊임없이 상처와 불화를 겪고 그것을 곱씹는 이들에겐 견디기 힘든 무게다. 그래서 결국 세상과 인간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다만 우리 둘은 염세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대화의 끝에서 그는 늘 말했다.
“우리도 결국 병신이지.” 나는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그는 “조금 나은 병신일뿐”이라며 일축했다.
나에게 그 대화는 의미가 있었지만, 그에게 결론은 개소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뒤지고,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그런 나를 그는 비웃었고, 결국 우리는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멀어지면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염세주의를 깊이 파고들면 그 밑바닥에는 다른 진실이 있다. 사랑받고 싶었으나 좌절된 마음. 기대가 꺾이고, 바람이 무너지고, 결국 마음을 닫아버린 흔적이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태도 같지만, 실상은 상처 위에 덧칠한 방어기제다.


결국 상처는 다시 드러내고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희망적인 건,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나도, 그도 상처를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서로에게만큼은 염세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혐오하면서도, 결국 서로를 통해 위로받았다.


그렇다. 우리는 상처받을까 두렵지만, 동시에 연결을 갈망한다. 염세주의조차 그 안에는 연결되기를 원하는 여린 마음이 숨어 있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내가 추악하다고 여긴 인간의 모습들 역시 각자의 방어기제이자 그림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그림자들은 내 안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염세는 그렇게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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