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속에서 기쁨 누리기
우리는 누구나 역할 놀이에 익숙하다. 자식, 부모, 연인, 직장인... 무대에는 주인공이 있고, 그를 빛내는 조연과 행인들이 있다. 사회는 이 위계질서 위에 견고하게 세워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역할에 고정하며 안정감을 느낀다. “나는 ○○회사 과장이며, ○○의 아들이자 아빠다.” 그러나 역할은 결국 내려놓아야 할 무대 의상일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늘 ‘착한 아들 역할’을 맡았다. 학폭에 시달릴 때도 조용히 참고, 내가 희생하면 집안이 평화로울 거라 믿었다. 그리고 나도 어딘가에 소속해 안정감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겉돌았다. 친구와 밥을 먹어도 혼자인 것 같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남들이 낙오자라 부르는 길만 걸었다. 정규직 대신 계약직과 파견직을 전전했고, 퇴사도 밥 먹듯 했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순간에 충실했다. 친구들은 미친놈 보듯 했고, 한 친구는 “너는 대학까지 나와서 왜 그렇게 사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더 이상 나를 역할 속에 가두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요즘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행인 역할에도 배속되지 못한 이들이 무대에 올라와 각자의 춤을 춘다. 기성세대와 친구들은 “빨리 장녀, 어머니, 직장인 역할을 맡아라”라고 등 떠밀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이것은 역할에서 존재로 나아가는 길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각자 나름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성장통이며, 동시에 기쁨의 여정이다.
나는 최근 색칠놀이를 시작했다. 미술에 자신이 없었지만, 다이소에서 어린이용 색연필과 바다동물 색칠북을 샀다. 그것이 내가 출발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였다. 가격도 합계 4,000원, 안전한 모험이었다.
처음엔 유치하지 않나 싶었다. 빨리 끝내야 한다는 강박도 올라왔다. 그런데 어느새 웃고 있었다. 내가 고른 색으로 나만의 색칠을 했고, 하얀 종이 위에 채워지는 나의 색깔들은 아름다웠다. 그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그림은 완성되었고, 그림 속 동물들은 나를 보며 방긋 웃는 듯했다. 내 손으로 완성한 작은 창조, 그것만으로도 기쁨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화가도, 자기 계발에 몰두한 청년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몰입하는 ‘나’였다. 성취를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오는 충만함이었다. 과정 또한 즐거웠다.
누군가는 MZ세대를 양심도 없고,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더 이상 역할로 개인을 한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과정 중에 있다. 진정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자기만의 색으로 드러나며,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 속에 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제 성장의 동력은 희생과 결핍이 아니다. 존재와 기쁨이다.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나’로 자연스레 이끌 것이다. 하루의 끝에 내면의 나는 묻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만족했는가? 과정 또한 즐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