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낸다.

by 시더루츠

글을 쓰다 보면 문득,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호기심이 생기면 영상을 보기도 하지만, 결국 책을 더 신뢰한다. 책 속에는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이 대화가 아닌 글로 정제되어 담기기 때문이다. 특히 자서전이나 에세이는 그 흔적이 잘 드러난다.


반면 대화는 양방향 의사소통이다. 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주로 상대방에게 맞추는 편이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 익숙한 주제를 고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화 속 감정과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진 결과물이 된다.


그런데 글은 다르다. 글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억눌린 것들을 정제하여 쏟아내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는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 ‘튀지 말라’는 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 속에서 개성과 표현은 쉽게 억눌린다. 나는 그 굴레를 깨고 싶다. 도덕이나 양심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신을 존중하고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나는 가치다. 공자도 사랑을 먼저 강조하지 않았는가. 사랑이 바탕이 될 때 예(禮)는 저절로 따라온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께 억지로 인사를 하곤 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인사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겉치레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지만, 여전히 진심 없는 예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원칙 역시, 내가 먼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는다.


둘째,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나는 스스로 돌아보는 데 익숙하다. 내가 경험한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옮기다 보면 체계가 잡히고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불쾌한 감정이 있다면 글로 차분히 풀어내야 한다. 그렇게 앉아 살펴주다 보면 그 안에 숨겨진 의도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고,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셋째, 사람을 보듬기 위해서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자연과 동물은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는다. 우리 또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것은 나 또한 보듬을 받아왔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역사 속에서 언제나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한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가 보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후손을 위해, 혹은 주변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갔다. 나는 거기에서 그들의 사랑을 느꼈고, 따뜻한 보듬을 받았다. 세상은 결국 그런 사람들의 헌신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들은 뜨겁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것들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서양에도 많은 이들이 있지만, 나는 특히 한국의 세종대왕, 율곡 이이, 정약용을 떠올린다. 그들의 헌신은 투덜대고 불만만 일삼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고, 더 나은 세상과 더 큰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정신의 밑거름이 되어 오늘의 나를 지탱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통해,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며 하루를 곱씹고, 억울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이해가 찾아와 분노가 가라앉기도 한다. 말로는 다 담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글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정리하기 위해, 보듬기 위해, 때로는 싸우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나무 옆 익숙한 자리에 앉아, 글로 나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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