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전 두산 회장님의 인터뷰
우연히 TV에서 손석희의〈질문들〉프로그램에 나온 박용만 전 두산 회장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은퇴 후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는 그는, 벌써 10년째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반찬을 만들어 봉사하고 있었다.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반드시 반찬을 배달한다는 그의 태도에서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끌렸다.
손석희는 재벌에 대한 선입견,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니냐”는 질문을 노골적으로 던졌다.
그러자 박 회장님은 그저 묵묵히, 담담히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회사의 어려움이나 경영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 제 탓입니다”라며 담담히 자신의 부족함을 말했다.
비난의 화살을 피할 명분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말을 아끼는 그의 표정은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손녀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손녀가 반찬 나눔 봉사에 함께한다고 하자 손석희는 “기특하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건 평가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냥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한마디에서 젊은 세대에 대한 그의 깊은 존중과 배려가 전해졌다.
그가 쓴 책 두 권을 바로 사서 읽었다.
‘재벌로서 껍데기뿐인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놀라웠다.
대기업 회장의 직함을 걸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진짜 성찰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일과 습관, 가족,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성찰하는 그의 글에는
이미지 관리나 보여주기식 태도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그의 문장들엔 오직 진심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대기업 총수의 삶을 부러워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수행기사가 데리러 오고, 하루 종일 일에 치이다가,
다시 수행기사가 데려다주는 톱니바퀴 같은 삶이었다. 그 안엔 자유가 없었다.”
이 말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이미 그가 말한 그 자유를,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정치도 사회도 썩었다고, 어른들은 말로만 선을 이야기한다고, 나는 늘 냉소적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박용만 전 회장님은 달랐다.
그의 겸손함, 그리고 젊은 세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 속에서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느꼈다.
진짜 어른이란 거창한 지위나 말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같은 위치에서 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른이 아이를 보듯이
연민이나 동정으로 바라보지도 않으셨고,
이미지 관리를 하거나 아첨꾼처럼
자신의 삶을 꾸며내거나, 포장하는 것이 없으셨다.
그도 그저 한 사람으로서 친구들의 부탁을 매몰하게 거절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또 후배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걸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