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을 읽고
도파민네이션을 읽게 된 건 우연에 가까웠다. 원래는『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이 궁금했지만
책을 사기에는 망설여졌고,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가 보았더니 이미 누군가 대출해 간 상태였다.
비슷한 책을 찾다 눈에 들어온 것이『도파민네이션』이었다.
이 책 역시 인기가 많은 탓인지 일반 판본은 없고 큰 글자로 인쇄된 책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덕분에 글씨가 커서인지 책이 술술 읽혔고, 내용도 직관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 초반, 자위 기구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자극적이었다. 솔직하게 그 상담을 하면서 혐오스러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 저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자신의 중독을 돌아보고, 의존을 줄이기 위해 애썼던 경험담은 인상 깊었다.
많은 책들에서도 이야기하듯 요즘 시대의 문제는 결핍이 아니라 풍요다. 특히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은 생각보다 각종 문제를 만들어 낸다. 노력과 의지, 인내와 관찰을 통해 천천히 얻어야 할 보상들이 손쉽게 주어지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편한 길만 찾게 된다. 중독의 형태는 사람마다 달랐다. 도박이나 마약처럼 누구나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부터 로맨스 소설처럼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것까지,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다.
법적으로 최악의 것들을 막을 수는 있어도 모든 중독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하나의 중독을 끊으면 다른 중독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흔했다. 그래서 저자는 결국 ‘절제’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다 알고 뻔한 내용이지만 말이다.
책에서 도파민이 쾌락과 고통을 관여한다고 말했다. 그 둘은 같은 선상에 존재하며,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쪽이 좋았던 만큼 그것이 사라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몽땅 끌어다 쓴 도파민의 부재 덕분에 일상의 잔잔한 행복과 작은 만족을 느끼는 능력을
점점 무디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절제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잣대나 혹은 다른 이유의 절제는 결국 조금만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어도 무너져 내리기 쉽다. 자기합리화는 너무나 간악해서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자극을 끊고 자연인처럼 살 수도 없다.
후속작인 『도파민 디톡스』에서 정리한 쾌락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이미 삶 곳곳에 너무나 많다.
눈만 뜨면 마주하는 SNS, 유튜브, 쇼츠, 단 음식, 심지어 운동조차 중독이 될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정답은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되기를 바랐던 사람은 상당히 드물 것 같다.
삶은 의도한 대로만 굴러가지도 않고,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며, 원하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삶에는 딱 맞는 틀을 세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해지는 것 같다.
결국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믿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는 것.
내가 만들어 가느냐, 아니면 휩쓸리느냐의 차이다.
우리는 참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인간관계, 환경, 부모, 분위기, 그리고 중독까지.
뼈아픈 사실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무리 책임을 미루고 싶어도
결국 그 몫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선택이 나의 과정을 만들고, 그 과정이 나를 만들어 간다.
우리는 바닷물에 쉽게 휩쓸리는 연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내어주지는 않은 채, 내가 진정 원하고 만들고 싶은 나의 모습을 향해 조금씩 걸어갈 수는 있다. 어느 시대든 그런 사람들은 존재해 왔고, 니체는 그들을 ‘초인’이라 불렀다. 자기 극복, 자기 초월 말이다.
나도, 당신도 그럴 수 있다. 아주 작은 믿음만 있다면.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 될 것이다.